페니웨이™의 궁시렁

돈주고 불법사업을 지원하시겠습니까?

페니웨이™ 2007. 11. 19.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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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적으로 악인이어서 무엇인가 범법행위를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담배꽁초를 아무데나 버리거나, 침을 뱉고, 정차선을 어기고 떡하니 서있는 운전자, 보행신호를 무시하는 보행자... 대부분 악의적인 마음을 품고 그 일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무심결에 별로 죄의식없이 저지르고 있을뿐.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것도 '경범죄'로서 범칙금이라는 처벌이 주어질 수 있는 범죄행위다.

물론 인간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저런 사소한 잘못을 하며 매일을 산다. 이것은 우리 가족의 모습일 수도 있고 나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다. 그러나 때로는 나 하나뿐이야 하는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도 뜻하지 않은 피해를 주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죄의식이 있고 없고 간에 잘못이란 어디까지나 잘못이란걸 누군가가 지적해줘도 대개는 그러한 지적에 적반하장식으로 달려든다. '니까짓게 뭔데?'

잠시 화제를 돌려보겠다. 영화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무엇인가 수집하는 것을 취미로 가진 매니아틱한 취향을 가진 나로선 DVD라는 매체가 한국에 처음 발매되고 그것이 보급화되기 시작했을 때 너무나도 기뻤다. 이젠 보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던 영화들이 깨끗하게 상품화되어 한글자막에 부가영상까지 포함되어 나오는 DVD를 보고 축복이라고까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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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처음 DVD가 나왔을 때, 가격이 개당 2만원을 호가했지만 그것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차곡차곡 수납장에 들어서는 나만의 콜렉션을 보며 유리지갑 인생이지만 나름대로의 낙이 생겼다며 좋아하곤 했다. 세월이 지날수록 어쩔 수 없이 화질이 열화되는 비디오테입과는 비교가 안될만큼 소장가치가 충분한 매체였기 때문이다.

초창기의 한국 DVD시장은 꽤나 낙관적이었다. 메스컴은 한국내의 DVD시장이 랜탈 위주의 비디오와는 달리 셀쓰루(sell-thru)방식으로 선진화되어 정착되었다는 평가를 내릴만큼 고가의 취미생활임에도 이에대한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수많은 직배사가 DVD시장에 뛰어들었고, 용산 등지에서 불법 VCD를 양산해 짭짤한 재미를 봤던 일본 애니메이션도 당당히 판권을 획득한 정식 출시를 통해 공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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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와 야수] DVD 스페셜 패키지. 고급스런 디지팩에 생산넘버까지 찍혀있는 한정판으로
현재는 절판되어 시중에선 구할 수가 없어 그 가치가 대단히 높다.
 


물론 이당시에도 필자 주변의 친구들은 나를 '미친놈' 취급했다. '아니 인터넷에서 몇분이면 다운받는걸 그 몇만원씩주고 머하러 사나? 돈이 썩어나나 보군!' 열이면 열, 대부분이 이런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도 웃기는건 내가 사놓은 DVD를 얼씨구나하고 빌려간다는 사실이다. '보고 싶으면 돈주고 사라, 이것들아!' 마지못해 빌려주면서 쓴웃음을 지으며 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같은 현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2,3년 사이에 DVD시장은 축소되기 시작했으며 처음에는 2만원을 호가하던 DVD들이 각종 할인과 덤핑 공세에 밀려 몇천원대로 전락했다. 초창기를 생각하면 때론 배아프거나 눈물나는 일이긴해도, DVD의 가격 거품이 빠져 구입층을 확대한다는 측면에선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럼에도 DVD시장은 살아나지 않았다. 급기야 앞다투어 뛰어들었던 직배사들은 하나, 둘 한국에서 철수했고 이젠 신작 DVD를 접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다. 한달에도 백여편씩 쏟아져 나오던 초기와는 달리 지금은 완전히 개점휴업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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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쇼핑몰의 DVD가격. 물론 모두가 이렇게 저렴한건 아니지만 정품 DVD도 가격이 고작 2,3천원이면 구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DVD가 더는 고가의 물건이 아니라는 얘기다.


어느날 필자의 친구가 찾아와서는 자기가 DVD를 싸게 사왔다며 자랑을 했다. '그래 DVD값이 내릴대로 내렸으니, 이젠 좀 살 만하겠지' 싶어서 뭘 사왔나 하고 봤다니. '아메리칸 갱스터'와 '본 얼티메이텀'을 포함해 아직 국내에 개봉도 안했거나 DVD출시가 안된 신작 영화들이었다. 깜짝놀라 다시 보니, 역시나... 짝퉁 DVD였다. 길거리에서 5편에 만원주고 샀다며 자기도 이제 DVD유저라고 자랑삼아 말하는 친구녀석, 이걸 어떻게 한다?

사실, 어느새부터인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게 된 불법 DVD 노점상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과거 애니메이션 VCD로 용산등지에서 독버섯처럼 퍼져나가던 무판권 불법영상 시장이 짝퉁 DVD라는 모습으로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것들은 인터넷에서 다운받는 동영상과는 달리 공짜가 아니다. 엄연히 돈을 주고 거래되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자신의 돈을 갖다바치면서 불법사업을 지원하고 있는 셈이다. 가히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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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등지에서 보도위에 버젓히 가건물까지 차려놓고 장사하는 불법 DVD판매점.
단속의 의지는 커녕 늘 소비자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사진은 DVD Prime의 회원들 제보)


단지 레코더와 프린터만 있으면 누구나 뛰어들 수 있는 사업이어서 인지, 이같은 불법 DVD 노점상은 급속도로 번져가고 있으며, 이젠 용산뿐만이 아니라 각 지하철 역 환승장, 심지어는 승강장 위에서도 버젓이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판매하고 있다. 물론 이를 제대로 단속하는 사람들은 전무하다시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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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지하철이나 길거리, 사람가는 곳이면 어디서나 볼 수 있다. 가격은 4~5편에 만원이지만 최근 정품 DVD의 가격하락을 생각하면 그리 싼 편도 아니다. (사진은 DVD Prime의 회원들 제보)


정품 DVD 시장이 활성화될 무렵에는 그 비싼걸 왜 사서 보냐고 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것이 '불법'임에도 아무런 죄책감없이 줄을서서 구입을 하고 있다. 정작 정품 DVD의 가격도 많이 내린대다, 시장은 죽어가고 있는데도 말이다. 돈주고 사서 보는 것이니 자기는 대가를 지불했다고 생각하는 의식이 더 문제다. 한마디로 돈을 냈으니 나는 죄가 없다는 것이다. 자기가 불법행위에 동조했다는 것에 일말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 물론 정품과 불법을 구별하는 능력이 없는 일반인이 더 많다는게 문제라면 문제지만 말이다.

친구녀석이 사온 DVD를 봤더니 품질이 조악하기 그지없다. 말이 DVD지, 한번보고 버려도 시원찮을 일회용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안타깝다 못해 화가 났다. 친구한테 이걸 돈주고 사다니 제정신이냐고 묻자, 오히려 반색을 하면서 다운받지 말고 DVD사서 보랄때는 언제고 이제와 딴소리냐며 되려 역정이다. 그럴거면 차라리 DVD대여점에서 빌려보라고 말을해도 소용이 없다. 빌려보는건 소장하는 기쁨이 없다나.... 참 기가 막힌다. ㅡㅡ;;


불법 DVD와 디빅 다운로드의 가장 큰 문제는 그런 암흑의 루트가 존재한다는 의미보다는 (사실 길거리 테입부터 시작해 암흑의 루트에 대한 역사는 상상을 초월하니까) 그 시장 자체가 보편화되어 정품시장을 고사시키고 더 나아가 그동안 정품 보급에 일조했던 소비자들을 일순간에 바보로 전락시킨다는 점이다. 어쩌다 한번이 아니고 일상화되어 버린 이 시점에서 이러한 불법시장의 파이가 점점 커져가면 갈수록 정품시장은 성공적으로 정착할 확률이 급격히 떨어지게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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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영화를 사고 싶어도 DVD 시장의 축소로 더 이상 출시가 안되어 구입하지 못하는 정품 소비자들,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신작프로를 단돈 1,2천원이면 구할 수 있어 먼저 즐기는 불법 소비자들. 뭔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됐다. 내돈주고 내 원하는 물건 산다는데 니가 뭔데? 가 아니다. 잘못은 잘못으로 인식하고 사주지 않은 것이 정상이다.

이 글은 불법 DVD를 판매상들을 처벌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수요가 없으면 공급도 줄어드는 법. 우리가 할 수 있는건 아주 쉽고 간단하다. 불법 DVD를 구입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나라에서는 판매자보다 구매자를 처벌하는 법이 더 강력하다는데, 사실 맞는 얘기다. 다시 말하지만 이 글에서 누구를 정죄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우리는 누구나 악의를 가지고 일을 저지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잘못임을 알고 누군가 피해를 본다면 적어도 나만은 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가지는게 정상이 아닐까? 제발 돈주고 불법에 동참하지 말자.

*사진협조: DVD Prime (http://dvdprime.paran.com) 회원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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