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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 -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부부간의 전쟁

페니웨이™ 2008. 2. 6.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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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화제작으로 주목받았던 [싸움]이 벌써 대여점용 DVD로 풀렸다. 거의 2개월도 채 안되는 홀드백 기간을 거쳐 부가판권시장으로 넘어온 것이다. 설경구, 김태희의 막강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왜 이작품이 그토록 관객들의 질타를 받으며 조기종영의 수모를 겪은채 DVD영화로 직행해야 했을까. 그 이유를 이제 살펴보도록 하자.


 

    1.한국판 [장미의 전쟁]?  


[싸움]은 여러모로 마이클 더글러스와 캐서린 터너가 피터지게 싸운 부부싸움극, [장미의 전쟁]을 연상케 하는 스토리를 가졌다. '죽일만큼' 서로를 증오하는 부부의 싸움. 과연 얼마나 이 내용이 한국적인 정서에 맞게 표현되고 있을까?

[싸움]의 장르적 슬로건은 "하드보일드 로맨틱 코미디"이다. [장미의 전쟁]이 웃음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도 끝끝내 비극적 종말의 주제의식을 드러낸 반면, [싸움]은 처음부터 코미디라는 장르의 보호아래 주제의식을 은근슬쩍 비켜가는 꼼수를 쓰고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풍자적 성격이 강했던 [장미의 전쟁]은 코믹했지만 동시에 무시무시했다. 그 이유는 영화의 결말을 보면 분명해진다.


ⓒ 20th Century Fox. All rights reserved.

코믹하지만 부부간의 불화에 대한 제대로 된 접근법을 보여준 [장미의 전쟁]


그러나 [싸움]은 어떠한가? 내용을 살펴보면 서로 죽일 듯이 싸우려는 부부의 얘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죽일 듯이 달려드는 건 (전)아내인 진아(김태희 분)쪽이다. (전)남편인 상민(설경구 분)은 비록 진아의 공격성을 자극하는 원인제공자이기는 하나, 진아에게 물리적 위해를 가하는 인물은 결코 아니다. (실제로 영화에서는 상민의 반격다운 반격한번 없이 영화가 끝이 난다) 이들의 싸움은 결코 무시무시하지도 않으며, '더욱 중요하게도' 전혀 우습지가 않다. "하드보일드 로맨틱 코미디"라고 자처하지만 전혀 "하드보일드"하지도 (진짜 쌈박질을 할거면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정도는 되야지!), "로맨틱"하지도, "코믹"하지도 않은 것이다.

ⓒ 시네마서비스/ 상상필름 All rights reserved.


이점은 무엇을 드러내는가? 애초부터 부부싸움이라는 테마 자체가 그저 떡밥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이다. 부부싸움을 빙자해 보여주고 싶었던건 분노의 화신처럼 변신한 김태희라는 배우의 새로운 모습. 문제는 그마저도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기 때문에 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실망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리게 만들만큼 무시무시한 캐릭터가 되기엔 김태희가 너무 갸날프고, 이쁘장하다는 사실만 증명했을 뿐이다.


 

    2.김태희의 연기력 논쟁  


[싸움]에서의 언벨런스한 캐스팅은 영화의 홍보시점에서부터도 지적되어 왔던 사실이다. 누가보더라도 설경구와 김태희는 삼촌, 조카 사이같지 않나 이말이다. 특히나 김태희는 이 영화에서 큰 논란이 되었다. 이미 [중천]에서의 천편일률적인 표정연기로 관객과 평단의 집중포화를 맞은 그녀로서는 이번의 이미지 변신이 자신의 연기경력에 있어서도 대단히 중요한 발판이 될 것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관객들은 그다지 너그러운 평가를 내리지 않았다.

ⓒ 시네마서비스/ 상상필름 All rights reserved.

이런 모습조차도 사랑스런 여배우, 김태희


실제로 김태희의 연기 자체는 나쁘지 않다. CF모델에 길들여진 이미지를 과감히 벗어던진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그 의지를 칭찬할만 한데, 온몸을 사리지 않는 역할의 몰입도도 좋은 편이다. 다만 이 캐릭터는 김태희에게 있어서 맞지 않는 옷 같다는게 문제다. 체격적으로도 아담하기 서울역에 그지없는 그녀가 [실미도]의 북파공작원 출신 설경구를 벌벌떨게 만드는 역할이 가당키나 한 것이던가. 애초에 캐스팅 될 예정이었던 염정아와는 너무 다른 스타일의 김태희, 캐스팅 디렉터가 저지른 미스 캐스팅의 불똥이 그녀에게 튀고 만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태희의 팬들이라면 100분내내 김태희의 눈물과 웃음, 장난끼 가득한 얼굴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할 듯.


 

    3.설득력의 부재  


무엇보다도 [싸움]에서 가장 문제시 되는건 설득력의 부재다. 애초에 쿨하게 헤어졌던 이들이 다시 만나 죽도록 싸우는 (거듭 말하지만 죽일 듯이 덤벼드는건 여자쪽이다) 이유를 뒷받침해 줄 만한 근거가 없다. 대화의 부족? 솔직하지 못한 감정표현? 집작? 여기저기에 뿌려놓은 요인들이 있기만 그 어느것 하나 속 시원한 답변을 주지 못한다. 시계추 하나에 병적으로 목숨을 거는 남편에 대해 이미 이혼한지 3개월이나 지난 마당에서 갑자기 열받아 폭력적으로 돌변하는 아내의 울분을 공감하고 이해해 줄 관객이 과연 몇이나 될까.

ⓒ 시네마서비스/ 상상필름 All rights reserved.


분명 성격의 차이가 분명한 두 사람이 결혼할 수 있었던 것은 서로를 이해하는 포용력과 이해 없이는 불가능했을터, 그러나 [싸움]은 이러한 전제를 모두 뒤로 한 채 서로에 대한 증오심만을 극단적으로 부각한다. 결국 감독은 "싸움"을 붙이기 위해 "예민결벽과다집착형 새가슴증후군"이라는 황당무계한 정신질환을 상민에게 떠넘겼으며, 과장과 오버액션이 판을 치는 광란의 소용돌이에 빠져든 관객들은 느닷없이 화가 풀어지고 다시 쿨하게 이별에 대처하는 이 커플을 보면서 "쑈를 해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4.지나친 PPL광고  


전지현 주연의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라는 영화를 기억하는가? '전지현을 내세운 2시간짜리 CF'라는 비아냥을 들었던 이 작품은 그 허술한 짜임새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짜증나리만큼 강조되는 간접광고 때문에 욕을 먹었다. 물론 PPL광고는 기업의 입장에서 볼때 아주 매력적인 홍보수단일지는 모르나, 뭐든지 지나치면 독이 되는 법. 공간적인 배경으로 쓰인 CGV나 아이파크 몰은 그렇다 치자.

ⓒ 시네마서비스/ 상상필름 All rights reserved.

서울우유 광고씬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작위적인 부분이라 오히려 역효과만 낸 PPL광고다.


김태희가 메인 모델로 활약중인 LG 싸이언이나 아예 대놓고 영화속에서 통째로 CF를 내보내는 서울우유 (비록 이름만은 우리우유로 바꿨다만 로고는 그대로다 ㅡㅡ;; )는 대체 뭐란 말이냐. 이러한 PPL 광고는 자연스럽지 않게 인위적은 모양새로 [싸움]의 요소요소에 배치되어 있다. 이것은 가뜩이나 산만한 [싸움]의 모양새를 더욱 흐트러 놓고 있으며, 관객들은 당연히 영화속 내용이 아니라 저런 노골적인 광고에 정신을 빼앗기게 된다. 결국 [싸움]은 광고주들에게는 만족스런 작품이었을지는 몰라도 관객에게 있어서는 '너무 확연히 눈에 띄는' 광고 덕택에 짜증만 쌓여가는 작품이 되었다.


 

    5.총평  


설경구, 김태희의 다소 파격적인 조합이 큰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했다. 물론 두 배우의 연기는 합격점을 줄만 하나, 연출의 허술함과 내용의 빈약함. 지나친 PPL 광고로 인한 완성도의 저하 등 전체적으로 볼때 결함이 많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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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물로서의 특징도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이나, 제법 흥미있는 소재를 가지고도 관객들과의 공감대 형성에 실패한 점은 [싸움]이 극장용 영화로서는 얼마나 부족한 것이 많은 작품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다만 '연기력 부재'라는 딱지를 떼어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김태희의 모습을 보면서 그녀의 또다른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이 [싸움]의 유일한 미덕이랄까.


* [싸움]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시네마서비스/ 상상필름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 참고 스틸: 장미의 전쟁(ⓒ 20th Century Fox.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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