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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퀀텀 오브 솔러스 - 변화와 전통의 혼재, 과도기적 제임스 본드의 딜레마

페니웨이™ 2008. 11. 10.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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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의 최장수 프랜차이즈인 007 시리즈의 22편 [퀀텀 오브 솔러스]가 드디어 공개됐다. 성공적인 리부팅이라는 평가를 받은 [카지노 로얄]의 후속작인 만큼 [퀀텀 오브 솔러스]에 거는 기대는 클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비슷한 맥락에서 배트맨 시리즈를 리부팅 했던 [배트맨 비긴즈]의 경우도 속편 [다크 나이트]가 올해 경이로운 성과를 거두며 극찬을 받지 않았던가. 내용상으로도 역대 007 중 유일하게 전작의 연장선상에 놓인 [퀀텀 오브 솔러스]에 대해 몇가지 점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1.퀀텀 오브 솔러스 혹은 속 카지노 로얄?

[퀀텀 오브 솔러스]는 여러모로 [카지노 로얄 2] 내지는 [속 카지노 로얄]이라고 부르는 편이 낫지 않나 싶다. 비록 전작인 [카지노 로얄]이 속편의 여지를 남겨둔채 끝나긴 했어도 영화 자체로는 단일 완결구조를 갖추었던 것에 비해 [퀀텀 오브 솔러스]는 반쪽짜리 영화의 느낌이 강하다. 이는 단지 [카지노 로얄]의 엔딩 후 1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시작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는 첩보물 본 트릴로지와 큰 대조를 이루는데, 사실상 [본 슈프리머시]가 전작인 [본 아이덴티티]와 연계되면서도 시리즈 내에서 또한번의 작은 리부트를 시도해 독창성을 확보한 것과는 달리 [퀀텀 오브 솔러스]는 전작의 구성과 스타일에 상당부분 의존하고 있으며, 알맹이는 없이 흉내만 내다가 끝난다는 느낌이 든다. 이에 대해서는 차차 얘기해 보도록 하자.


2.불친절한 액션 시퀀스

이미 이전 포스트를 통해 언급한 것과 같이 [퀀텀 오브 솔러스]의 액션은 전반 1시간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영화의 시작과 함께 정신없이 몰아붙이는 카 체이싱은 상당한 박력과 사실감을 선사하는데 문제는 액션의 편집이 너무 빠르고 현란하다는 점이다. 쉽게 풀어 설명하자면 분명 뭔가 멋진 동작을 한거 같기는 한데 정확히 그게 뭐였는지를 눈으로 확인하기가 힘들다는 얘기다. 이른바 불친절한 액션 시퀀스라고 하면 맞을 듯. 이는 감독이 액션연출에 자신이 없을 때 그것을 커버하기 위한 수법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아 [퀀텀 오브 솔러스]의 액션이 과연 훌륭한지 의구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 MGM/UA Studios/EON Productions/Columbia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사실상 액션 연출 경험이 전무하다시피한 마크 포스터의 전작들을 보더라도 ([몬스터 볼], [연을 쫓는 아이] 등) [퀀텀 오브 솔러스]의 육해공을 넘나드는 전방위적인 액션은 오히려 감독의 핸디캡을 드러내는 아이러니가 아닐런지.

더군다나 [퀀텀 오브 솔러스]는 라이벌인 '본 트릴로지'를 지나치게 의식했다는 것이 명백하다. 초반부의 지붕 추격씬이나 오토바이 점프씬, 실전을 방불케 하는 1:1 듀얼씬 등은 마치 [본 얼티메이텀]의 데자뷰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액션의 디자인이 동일하다. 물론 '본 트릴로지'의 스턴트 코디네이터 댄 브래들리가 참여한 것도 있지만 굳이 [본 얼티메이텀]의 아류작 냄새가 나도록 액션의 방향을 의도한 건 분명 [퀀텀 오브 솔러스]의 독창성을 흐릿하게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는 셈이다.


3.드라마의 결핍

007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육,해,공으로 전 방위적인 액션 공세가 펼쳐지긴 하지만 그다지 액션에 올인하는 작품이 아니라는 점도 특이하긴 한데, 그렇다면 감독의 장기인 드라마는 어떠한가? [퀀텀 오브 솔러스]의 전체적인 구성은 전반부-액션, 후반부-드라마의 [카지노 로얄]과 동일한 스타일로 진행된다. 그러나 감독이 액션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은 것일까. [퀀텀 오브 솔러스]는 어이없을 정도로 드라마의 심한 결핍을 드러낸다.

ⓒ MGM/UA Studios/EON Productions/Columbia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이는 2시간이 채 안되는 106분의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후반부 들어 급속도로 지루해진다는 점에서 분명해지는데 [퀀텀 오브 솔러스]라는 제목이 무색할 정도로 실제 '퀀텀'이라는 조직에 대해서는 거의 그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채 막을 내리는 것 역시 이 영화가 말하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점을 더한다. (물론 [퀀텀 오브 솔러스]에 담긴 중의적인 의미를 생각하자면 납득할 만한 제목이긴 하다) 러닝타임에 쫓겨서 무리하게 생략한 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영화는 본드의 과격한 단독 행동에 설득력을 줄만큼 충분한 네러티브를 제공해야 하지 않았을까. '퀀텀'이 단지 맥거핀에 불과한 것일지라도 플롯의 방향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4.클리셰의 제거와 오마쥬가 의미하는 것

영화가 시작하면 상당수 007 매니아들은 당혹할 것이라 생각되는데, [퀀텀 오브 솔러스]에는 (외전을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건베럴 시퀀스가 생략된채 진행된다. 그외의 여러 부분들 (Q의 부재나 '본드, 제임스 본드' 대사의 생략, 보드카 마티니를 주문하는 장면의 생략 등)이 제거된 것은 분명 전작 [카지노 로얄]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의식한 것이긴 하지만 [카지노 로얄]이 기존 007 시리즈의 전통적 클리셰를 교묘히 변화시켜 신선함을 준것에 비하면 [퀀텀 오브 솔러스]의 생략법은 알게 모르게 다소 이질적인 느낌을 준다. (물론 이것이 장점인지 단점인지는 순전히 영화를 접하는 관객 각자의 판단에 달렸다)

하지만 [골드 핑거], [뷰투어킬], [위기일발] 등 전작들의 오마쥬를 배치한 것으로 볼 때 [퀀텀 오브 솔러스]가 변화와 전통의 과도기적 위치에 있는 작품인 것은 분명한 듯 하다. 이제 중요한건 앞으로의 작품이 계속 변화를 추구할 것인가 아님 전통으로 회귀할 것인가하는 점이다. 영화의 말미에 M이 007에게 자신에게로 돌아오라고 요청하는 대사가 암시하는 것이나 건베럴 시퀀스의 위치([카지노 로얄]의 건베럴 시퀀스는 영화의 시작에 위치한다. 반면 [퀀텀 오브 솔러스]에서는 엔딩에 위치하는데, 여기서 건베럴 시퀀스는 일종의 '대괄호'처럼 두 영화를 한데 묶어서 '2부작 완결'임을 뜻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로 미루어 짐작하건데, 차기작은 기존 007 영화의 전통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다.

ⓒ MGM/UA Studios/EON Productions/Columbia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일각에서는 퀀텀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점, 그리고 최근 트릴로지를 지향하는 영화계의 추세에 비추어 차기작이 [카지노 로얄] 3부작으로 연결될 가능성에 대해 얘기하고 있지만, 사실 마크 포스터 감독이 차기작의 감독직을 맡지 않는다고 미리 공언한 이상, 이는 섣부른 판단일 수 있다. 오히려 퀀텀의 존재는 냉전시절 악의 축을 담당했던 스팩터 조직을 대체하는 상징적인 주적(主敵)으로서 지속적으로 이용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게다가 [퀀텀 오브 솔러스]로 [카지노 로얄]의 약발이 급격히 떨어진 이상 3부작의 논의 자체도 EON측에서는 검토의 대상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부담이 상당히 클것으로 생각된다. 뭐 이런 생각은 다음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나와봐야 알겠지만 말이다.


5.악당의 빈약한 카리스마

전작 [카지노 로얄]의 유일한 단점으로 지적되었던 것은 악역인 르쉬프가 메인 악당으로 등장하기엔 캐릭터가 너무 약하다는 점이었다. 그 점은 이번 [퀀텀 오브 솔러스]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 그나마 르쉬프는 얼굴에서 풍기는 카리스마라도 있었지, 이번에 등장한 도미닉 그린은 생김새부터가 유약한 도련님의 이미지다.

ⓒ MGM/UA Studios/EON Productions/Columbia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이미 [뮌헨]을 통해 다니엘 크레이그와 공연한 바 있는 매티유 아맬릭은 좋은 배우이긴 해도 007 시리즈의 보스급 캐릭터로는 확실히 미스 캐스팅으로 보여진다. 오히려 끝까지 살아남는 미스터 화이트의 캐릭터가 더 인상적인 듯. 다만 21세기에 맞게 정치,국가적 이념이 아닌 개인의 사리사욕과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악당의 방향성 만큼은 현실에 와 닿는다.


6.본드걸의 매력

제임스 본드의 바람끼를 충족시켜주는 수동적인 여성상은 이미 피어스 브로스넌 시대에 들어와서 사라졌다. 본드걸은 보다 적극적이며 극의 플롯에 좀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 시작했는데, [카지노 로얄]의 베스퍼 린드 만큼은 못하지만 [퀀텀 오브 솔러스]의 카밀(올가 쿠리렌코 분)은 상당히 매력적인 캐릭터다.

ⓒ MGM/UA Studios/EON Productions/Columbia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복수라는 영화의 테마에 있어서 제임스 본드와 대칭을 이루는 캐릭터이자, 유일하게 본드와의 로맨스에 빠지지 않는 본드걸로서 가치를 높혔다. 반면 기존 본드걸의 전통성을 지향하는 필즈 요원(젬마 아터튼 분)은 [골드 핑거]의 오마쥬를 위해 억지로 등장시켰다는 느낌이 드는만큼 다소 소모적인 캐릭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7.그밖의 사항들

어찌되었거나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은 어느정도 적응이 되어가는듯 하다. 마치 티모시 달튼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보듯 정극 연기와 액션 연기의 절묘한 균형을 이루는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는 이번에도 좋은 점수를 받을 것이 분명하다. 특히 해진후의 사막에서 카밀에게 양복 자켓을 입혀주는 본드의 모습은 [카지노 로얄]의 샤워실 시퀀스 이래 제임스 본드 중 가장 인간적인 매력을 풍기는 장면이다.

다만 차기작에 출연할 것인지에 대해 모호한 대답을 한 것을 두고 팬들 사이에선 벌써부터 차기작에 크레이그가 출연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으나, 다니엘 크레이그의 모토가 "작품을 제대로 파악하기 전까진 어떤 계약서에도 절대 서명하지 않는다" ([황금 나침반] 리뷰 참조) 라는 걸 고려한다면 그리 호들갑 떨 만한 사항은 아니다. (원칙적으로 다니엘 크레이그는 총 5편의 007 영화에 출연하기로 계약되어 있다)

두 번의 작품([여왕 폐하의 007], [살인면허])에서 '복수'라는 코드를 사용했다가 실패한 전례에 비추어 보면 이번 [퀀텀 오브 솔러스]는 나름대로의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카지노 로얄]에 비해 2% 부족한 속편으로서 향후 차기작의 방향에 따라 그 최종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을 듯 하다. 과연 차기작을 위한 훌륭한 포석이었는지, 아니면 전작의 후광에 기댄 단순한 속편에 지나지 않았는지를 말이다.

본 리뷰는 2008년 11월 10일자 미디어몹의 메인기사로 선정되었습니다.



* [퀀텀 오브 솔러스]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MGM/UA Studios/EON Productions/Columbia Pictures.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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