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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멈추는 날 - 남는 것은 허무와 공허감 뿐

영화/ㅈ 2008. 12. 26. 10:00 Posted by 페니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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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 침략'의 전형적인 모태가 된 [지구 최후의 날]이 2008년 리메이크로 돌아왔다. 아직까지도 역대 SF영화의 수작 반열에서도 최상위권에 위치한 원작의 명성을 고려해 본다면 이번 [지구가 멈추는 날]이 가진 부담이 결코 만만하지가 않다. 감독인 스콧 데릭슨은 이 작품의 감독직을 수락하면서 필립 카우프만의 성공적인 리메이크작 [외계의 침입자]를 목표로 만들었다는데, 과연 그의 바램처럼 [지구가 멈추는 날]은 성공적인 리메이크일까?


 

    1.리메이크에서 바뀐 점  


[지구 최후의 날]은 50년전 냉전시대의 국제정세와 미국의 사회상을 풍자한 사회적 메시지가 돋보였던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저예산 B급무비의 정서를 가진 영화였지만 SF영화의 관습적 클리셰를 모두 함축하였는 점이다. 우주인과 비행접시, 외계로봇과 레이저 광선 등 고전 SF의 표본과도 같은 이 작품이 가진 의미는 남다르다. 과연 [지구가 멈추는 날]은 원작의 이러한 특징들과 어떤 차별점을 보이고 있는가?

ⓒ 20th Century Fox. All rights reserved.


[지구가 멈추는 날]의 기본적인 설정에는 큰 차이가 없다. 인간 모습의 외계인과 외계로봇 고트의 위협, 그리고 외계인을 돕는 한 지구인, 그리고 지구가 정지하는 날의 공포. 다만 이번 리메이크에서는 21세기에 맞게 디테일을 좀 더 강화했다. 애당초 클라투가 어떻게 인간의 모습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과 고트의 파괴력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 UFO는 방주의 역할에 가까운 원형의 구체(求體)로 바뀌었고, 히로인의 캐릭터도 평범한 주부에서 과학자로 변했다. 이렇게 보다 구체화 된 설정으로 인해 [지구가 멈추는 날]이 원작보다 더 매력적인 작품이 되었을까? 그 답을 차차 알아보도록 하자.



 

    2.원작과의 이질감  


원작 [지구 최후의 날]은 잘 만든 영화이긴해도 영화의 스케일 자체는 크지 않았다.  오히려 원작의 매력은 클라투라는 캐릭터가 가진 미스테리한 분위기, 그리고 외계인 로봇 '고트'의 밝혀지지 않는 힘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 스토리에 내포된 사회적 메시지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만들어낸 고전영화 특유의 깊은 맛에서 우러나는 것이었다. 문제는 [지구가 멈추는 날]이 이같은 1950년대식 설정에서 크게 벗어나있지 않다는 데서 출발한다. 애초부터 원작의 재해석이 불가능한 이 작품에서 제작진들이 던진 승부수는 [지구가 멈추는 날]의 외형적인 모습을 바꾸는 것 뿐이었다.

ⓒ 20th Century Fox. All rights reserved.

고트(Gort)에 대한 능력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원작(위)에서 대부분 생략되어 있지만 그 존재감 만큼은 확실하다. 리메이크(아래)에서는 고트를 좀 더 부각해 블록버스터에 걸맞는 눈요기감으로 업그레이드 시켰을 뿐 오히려 원작에서의 신비감이 사라지는 부작용을 낳았다.



실제로 [지구가 멈추는 날]은 누가 뭐래도 겨울시즌용 SF '블록버스터'다. 인기스타인 키아누 리브스를 전면에 앞세운 것도 그렇지만 전편과의 차별성을 위해 가장 크게 부각시킨 것은 로봇 '고트'의 모습이다. CG로 무장한 고트는 몸집부터가 거대해졌고, 단지 존재만으로도 위협적이었던 원작의 묘사에 비해 고트의 능력치를 구체적으로 풀어놓으며 비중을 크게 늘렸다.

또한 원작에서 단지 전기를 30분간 정지시켰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실제로 지구를 소멸시켜가는 대재앙의 모습으로 '지구가 정지하는 날'을 표현하였는데 이는 블록버스터에 걸맞은 시각적 쾌감으로 승부를 보려는 제작진들의 상업적 얄팍함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불행하게도 50년대의 설정을 차용해 외형만 바꿔놓으면 그렇듯하게 보이리라는 계산은 결론부터 말해 큰 오산이었다. 때론 자기 패를 다 보이지 않는 것이 유리한 법. 이 작품은 '예고편'에서 보여준 그 이상을 보여주지 못하는 영화다.


 

    3.설득력 없는 내러티브  


원작의 클라투는 보다 박애주의적인 캐릭터로 묘사되는데, '지구인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해주기 위해' 병원을 탈출해 인간 사회로 침투한 그는 평범한 소년과 그의 엄마와의 교감을 통해 인간의 성품을 이해하고 신뢰하게 된다. 비록 촌스럽긴 해도 [지구 최후의 날]은 보편타당한 플롯을 가지고 있으며, 지구인에게 짧지만 강렬한, 그리고 아무도 다치지 않는 방법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깔끔한 마무리로 영화를 마친다.

반면 [지구가 멈추는 날]의 클라투는 대단히 기계적이며 때론 폭력적이다. 그에게 있어 지구인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려는 의지는 애당초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국방장관과의 짧은 대화를 통해 곧바로 지구를 청소하는 시스템을 가동하려는 섣부른 결심을 한다. 이는 원작의 신중했던 클라투와는 대조적인 차이를 보인다. 원작의 클라투가 인간의 멸망을 피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에 비해 새로운 클라투는 여차하면 지구를 리셋시킬 기회만을 노리고 있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 20th Century Fox. All rights reserved.


물론 원작에는 없던 "또 하나의" 외계인이 등장해 그래도 인간에게는 선한 면(직역하자면 '다른 면')이 있다는 일말의 긍정적인 대답을 들려주긴 하지만 어떤면에서 선하다는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전무하다. 또한 클라투가 두 모자(母子)와 함께 행동하면서 입장을 바꾸는 동기가 모호한데, 과연 이 두 사람이 인간의 선한 면을 어디까지 보여주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영화 중반까지 지독한 밉상이었던 꼬맹이가 갑자기 아버지의 무덤앞에서 슬퍼하는 모습을 보며 인간의 선함을 알것 같다고 말하는 클라투의 경솔한 태도는 영화의 어마어마한 설정(전 세계인을 싸그리 멸망시킨다는게 어디 보통 일인가)에 비추어 볼때 얼마나 어이없고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인가 생각해 보라.


 

    4.배우들의 연기와 캐릭터의 한계  


배우들의 연기는 대체적으로 평이하다. 원작에서 클라투를 연기했던 마이클 레니와 비슷한 외모를 지닌 키아누 리브스는 그간 자신이 맡아왔던 '메시아'적 캐릭터(리틀 부다, 매트릭스, 콘스탄틴)를 반복하고 있지만 여전히 시크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그밖에 제니퍼 코넬리나 제이든 스미스의 연기도 역할에 충실한 무난한 연기를 선보이고는 있으나 문제는 캐릭터에 대한 집증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 이는 배우들의 연기가 문제라기 보다는 애당초 각본에서 한정지은 진부한 캐릭터로 인한 한계로 보인다. (실제로 우주 생물학을 전공했다던 헬렌-제니퍼 코넬리 분-의 역할은 그저 클라투에게 메달려 기회를 달라고 애원하는 게 전부니 인물설정에 얼마나 무성의 했는지가 팍팍 느껴지지 않는가)


 

    5.[지구가 멈추는 날]은 종교영화?  


혹자는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를 연출했던 스콧 데릭슨의 이력을 근거로 이 영화가 가진 종교적(정확히는 기독교적) 색체에 심한 거부감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이는 원작 [지구 최후의 날]에 내포된 것과 사실상 큰 차이는 없다. 원작에서도 클라투는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모델로 삼은 구원자적인 인물로 묘사되며 (심지어 극중 그가 쓰는 가명은 '카펜터(목수)'다) [지구가 멈추는 날]은 여기에 종교적 의미를 아주 약간 더 첨가했을 뿐이다. 이를테면 초반부 클라투의 유전자적 샘플이 된 키아누 리브스의 손에 예수의 성흔을 연상시키는 상처가 남는다는 점이나 노아의 홍수처럼 방주의 역할을 하는 스피어의 등장 같은 요소들 말이다.

ⓒ 20th Century Fox. All rights reserved.


하지만 이번 [지구가 멈추는 날]에서 이같은 설정이 거부감을 주는 이유는 원작이 보여주었던 설득력있는 내러티브의 부재와 구원자보다는 파괴자의 이미지에 가까운 키아누 리브스의 클라투가 가진 무미건조함 때문이 아닐까 싶다. 반복되는 얘기지만 1950년대식 설정을 그대로 들여와 2008년의 틀에 억지로 맞추려 했다는 것 부터가 시대 착오적인 발상인 셈이다.


 

    6.총평  


냉전시대의 사회상을 자연파괴에 대한 경각심으로 바꾼 설정의 이동 자체는 칭찬할만하다. 그러나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건 영화를 풍부하게 만드는 극적인 요소라는 점을 간과했다. [지구가 멈추는 날]은 블록버스터가 지닌 화끈한 볼거리도, 액션도, 그렇다고 명확한 주제의식도 없다. 그저 모든걸 두루뭉실하게 뭉뚱그려 '인류가 멸망할뻔하다가 외계인의 변덕으로 살았네~'라는 식의 허무함으로 끝나는 무책임함의 극치를 보여줬을 뿐이다. 차라리 '인간이 악이다'라는 명제를 보다 더 구체적으로 표현했다면 영화가 가진 설득력의 부재를 어느정도 보완할 수 있었을 테지만 감독은 그 정도로 인간의 자기 혐오적인 모습을 담아낼 만큼의 배짱이나 진지함은 없는 듯 하다. 결국 이 영화에서 건질 것이라곤 나노로봇으로 흩어져 날아가 버리는 고트의 모습 뿐이다.


P.S:

ⓒ The Asylum. All rights reserved.


목버스터 괴작전문 회사인 어사일럼에서 이런 기회를 놓칠리가 없다. 과연 리메이크작과 이 짝퉁영화를 비교해보면 우열을 가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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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2008년 12월 27일자 미디어몹의 메인에 선정되었습니다.


* [지구가 멈추는 날]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20th Century Fox.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 참고 스틸: The day The earth sotpped (ⓒ The Asylum.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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