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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광의 공포영화관 - 어느 블로거의 공포영화 예찬

페니웨이™ 2009. 7. 31.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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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광의 공포 영화관 - 10점
김시광 지음/장서가


영화 블로거로서 아주 '조금' 알려지다보니 자주 받게 되는 질문이 있다. 아니, 하다못해 선자리나 소개팅 자리에 불려가 가뜩이나 말주변없는 내가 그나마 서로의 취향을 물어보던 중 영화에 대한 부분이 나오면 공통적으로 받는 질문이기도 하다. '어떤 영화를 가장 좋아하세요?'

물론 질문자는 별 생각없이 질문했거나 영화를 좋아하는 너라면 이 정도는 쉽게 답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의도에서 물어본 것이겠지만 나는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가장 난감하다. 구체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무엇인지를 묻는 것인지, 아님 장르를 묻는것인지조차 모호한데다가 그렇다고 '뭐든지 다 좋아한다'는 것처럼 무성의한 대답도 곤란하지 않은가.

그럴때면 무심코 튀어 나오는 대답이 '나는 공포영화만 빼고 대부분 좋아한다'다. 사실이지 의례 공포영화하면 연상되는 피범벅 고어의 향연이나 발없는 처녀귀신이 나와 '내 다리 내놔~'하는 영화는 도무지 취향에도 안맞거나와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개인적으로는 역겹다고 생각될 정도다. 그래서인지 내 블로그의 리뷰 중에는 공포영화에 대한 리뷰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시광의 공포영화관]이라는 책이 그토록 보고 싶었던건 무슨 심리였을까? 별로 즐기지도 않는 공포영화를 소재로 다룬 책을 봐봤자 장르물에 대한 애정이 당장 생길일도 없을텐데 말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아마도 공포영화라는 장르자체보다는 오랫동안 눈여겨 보아온 영화 블로거의 결실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김시광의 공포영화관]은 이글루스에서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블로그'를 수년간 운영해 온 Argento님(구 닉넴 Arborday)의 호러물에 대한 애정이 그대로 묻어나오는 책이다. 마리오 바바를 히치콕보다 거장이라 생각하며, 김기영을 한국영화 최고의 명감독으로 꼽을 정도니 지은이의 공포영화 사랑이 어느정도인지는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될 듯 하다.

저자의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블로그 화면 ⓒ Argento. All rights reserved.



혹자는 이 책이 공포영화를 위한 입문서라고 평할테지만 사실 나는 이에 동의하고 싶은 맘은 없다. 오히려 [김시광의 공포영화관]은 초보들을 위한 입문서라기 보단 공포영화 매니아나 또는 이미 입문단계를 지나 상당수 공포영화를 두루 섭렵한 관객들을 위한 참고서 내지는 '공유의 장'에 가깝다.

이 책은 각 영화속에 드러난 표현들이 의미하는 바, 즉 공포영화가 지니는 다양한 메타포를 조목조목 끄집어내어 친절한 해설을 풀어 놓고 있으며 이를 설명하기 위한 다량의 스포일러도 노출되어 있다. 따라서 처음 영화를 접하려는 독자들에게는 이 책의 상세한 설명이 오히려 적합하지 않을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책을 읽고 나면 그냥 무심코 3류 슬래셔 무비로 치부했던 영화조차 새삼 다른 작품으로 다가올 정도로 지은이의 필력에 새삼 감탄사가 나올 수밖에 없다. 또한 분석적인 시각과 '내공'이라는 단어로는 모자를 만큼 방대한 지식의 향연에 놀랄 따름이다. 그리고 공포영화에 대한 선입견이 그러하듯 영화를 보는 시각이 일반적일 것이라는 예상도 다소 벗어나는 면모를 보여준다.

가령 프랭크 다라본트의 [미스트]를 '몬스터'가 아니라 '이성의 한계'라는 카테고리에 분류해 놓은 것이나 [렛 미 인]을 '뱀파이어'가 아닌 '로맨스'로 분류해 놓은 것도 틀에 박힌 영화의 해석이 아닌 지은이의 독창적이고도 색다른 접근법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책을 모두 읽고 난 지금 나는 공포영화라는 장르와 여기에 종속된 여러 영화들을 놓고 신나게 밤을 세워가며 열띤 수다를 떤 기분이다. 그만큼 [김시광의 공포영화관]은 영화매니아만이 이해할 수 있는 진솔함과 특유의 재치를 발견할 수 있는 책이다. 더불어 한권의 책을 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밑천이 필요한지를 깨닫게 되는 순간 오히려 좌절감을 느낄 정도랄까.

공포영화라는 장르의 빈약한 기반만큼이나 B급 장르물의 다양성 자체가 결여된, 그리고 그것을 즐기는 관객층이 유난히도 얕은 국내 컨텐츠 업계에 이처럼 흔치않은 소재의 책이 나와준 것만으로도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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