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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초, 마블사 편집자 겸 작가인 스탠 리는 '순수한 자본주의자 스타일‘에 입각한 캐릭터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는 부유한 플레이보이 사업가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슈퍼히어로가 된다는 기본적인 설정으로 세계관을 잡아나갔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여기에 딱 부합하는 인물이 현실세계에도 존재했다. 하워드 휴즈. 헐리우드의 파워맨이자 사업가, 발명가, 모험가, 그리고 억만장자에 바람둥이인 그는 신비로운 사생활에 있어서도 여러모로 스탠 리가 구상한 인물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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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rvel Entertainment/Paramoun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아이언맨의 캐릭터 구상에 대해 스탠 리는 훗날 이렇게 회상한다. ’미치광이가 된다는 것만 빼면 (토니 스타크는) 딱 “하워드 휴즈”였죠‘.


마침내 1963년 3월, Tales of suspence지 39권에 스탠 리와 작화가 돈 헥과 잭 커비, 그리고 또 한명의 작가 레리 리버에 의해 탄생한 슈퍼히어로가 첫선을 보였다. 그의 이름은 안소니 에드워드 스타크. 줄여서 ‘토니’ 스타크라 불리는 이 인물은 거대 군수업체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CEO이자 바람둥이 재벌, 그리고 전기공학계의 천재적인 두뇌를 소유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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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rvel Comics. All rights reserved.


첫 등장에서 아이언맨은 베트남인들와 결전을 벌인다. 이는 당시 베트남전에 개입한 미국내의 시대상을 반영한 것인데, 그 당시 마블에서 발표했던 작품들, 이를테면 ‘판타스틱 포’, ‘인크레더블 헐크’의 주인공들이 냉전시대 과학기술의 경쟁에서 비롯된 부작용으로 탄생된 것임을 감안하면 ‘아이언맨’의 탄생 역시 이러한 냉전의 영향력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오히려 토니 스타크는 냉전시대를 보다 강하게 반영하는 인물이었는데, 그 이유는 그의 탄생과정에서 엿볼 수 있다. 훗날 여러 작품들을 통해 조금씩 변화가 생기긴 했지만 원작에서의 토니는 자신이 설계한 신무기의 성능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베트남에 시찰을 나갔다가 부비트랩을 건드려 심장부근에 파편이 박힌채 베트콩에게 납치된다. (후에 나온 작품들에서는 걸프전과 아프가니스탄 등으로 배경이 변화되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미국의 적대적 관계에 놓인 국가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영화판에서는 중동의 테러리스트로 그 대상이 바뀌었다.)

베트남의 군사제벌 왕추는 경쟁국 최고의 군수업자인 토니에게 막강한 신무기의 개발을 도와주면 토니의 몸속에 있는 파편제거 수술을 제공하겠다는 딜을 제안한다. 뜻밖에도 토니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데, 여기서 그의 사상적 성향이 드러난다. 토니 스타크는 뼈속까지 반공주의적인 인물로서 그가 받아들인 딜의 목적은 오로지 베트남을 탈출하는 수단을 만들기 위해 왕추가 제공하는 연구시설을 확보하려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내부조력자(?)인 호 인센 교수를 만나 아이언맨의 프로토 타입을 완성, 왕추의 조직을 붕괴시키고 탈출하는 와중에 미국 헬기 조종사 짐 로스를 만나 구조된다. (영화상에서 짐 로스는 토니의 친구로 되어 있지만 원작에서는 토니의 생명의 은인으로 훗날 워 머신이라는 사이드 킥으로 활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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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rvel Comics. All rights reserved.


이렇듯 공산주의에 대한 토니의 반감은 이 사건으로 훨씬 증대된다. ‘아이언맨’을 관통하는 테마는 테크놀로지가 국가방위에 미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중요하는 것인지를 은연중에 역설하고 있었다. 심지어 초기 아이언맨의 주적들이 모두 공산진영의 악당들(크림슨 다이나모, 타이타늄맨, 블랙 위도우, 만다린 등 소련이나 중국태생)임을 감안하면 아이언맨이 얼마나 반공사상을 강조하는 극우적인 캐릭터인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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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동화. All rights reserved.

‘아이언맨’의 영향력은 국내에서도 나타나는데 물론 이는 ‘아이언맨’이 유명해서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서 생긴 현상이다. 김청기 감독의 1978년작 [황금날개 123]에서 우람이라는 캐릭터의 본래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 관객은 아이언맨의 모습을 보게 된다.


재벌 2세로 태어나 장비빨로 승부하는 슈퍼히어로라는 공통점을 지녔음에도 ‘배트맨’ 브루스 웨인과 토니 스타크의 결정적 차이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브루스 웨인이 아버지의 죽임이라는 트라우마로 탄생한 캐릭터이자 이중적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테마를 다룬 반면 토니 스타크는 다분히 정치적이며 이데올로기를 상징하는 외향성을 띈다. 미국을 광풍처럼 휩쓸고 간 메카시즘의 잔영을 반영한 ‘아이언맨’의 태생적 한계에 대해서는 원작자 스탠 리도 두고두고 후회한 부분이기도 하다.

미국내의 반전여론이 높아지면서 마블측은 점차적으로 아이언맨의 테마를 토니 스타크 개인에게 맞춰가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다. 1976년부터 ‘아이언맨’의 작업을 맡게된 데이빗 미셸리니와 밥 레이튼은 무기생산의 필요성을 역설하던 초기의 주제를 점차 토니가 군수업에 대한 도덕적 회의감을 느끼는 것으로 변화시켰고 (이는 영화판 [아이언맨]에서도 그대로 표현된다), 나중에는 토니 스스로가 알콜 중독이나 정서적 취약성을 드러내는 개인적인 문제들을 풀어나는 점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성공적이어서 ‘아이언맨’이 장기적인 프렌차이즈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고 영화에서도 그 설정들을 대부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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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스타크가 알콜 의존증으로 혼란을 겪는 이야기를 다룬 1979년 Iron Man #128에 수록된 ‘Demon in a bottle’.

어찌보면 아이언맨은 그 어떤 슈퍼히어로 보다도 (심지어 성조기를 변형한 코스튬을 입고 다니는 캡틴 아메리카 보다도 더) 미국적인 영웅이다. 경찰국가이자 군사강국으로서의 미국이 가진 양지와 음지를 모두 반영한다는 측면에서 아이언맨의 기원과 적들의 정체성 또한 현재진행형처럼 변화되어 왔다.

ⓒ Marvel Comics. All rights reserved.


이제 40여년을 지속해온 ‘아이언맨’에게 있어 2008년은 새로운 분수령이 된 매우 중요한 해가 되었다. 무성한 소문들로 가득했던 실사판 [아이언맨]은 내용면으로나 오락적인 면에서 아주 만족스러운 작품이 되었고, 마블사의 또다른 히어로물 [인크레더블 헐크]와의 연계를 갖게 되면서 2012년 개봉예정인 크로스오버물 [어벤저스]라는 빅 프로젝트의 전망을 환하게 비추었다. 냉전시대의 산물에서 출발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 전례없는 슈퍼히어로로 변신한 21세기 아이언맨의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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