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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간 공들여 준비해온 [어벤져스] 프로젝트의 마지막 카드, [퍼스트 어벤져]가 공개되었습니다. 확실히 마블 사에서 [아이언맨]을 시작으로 뿌려놓은 떡밥들은 영화와 코믹스간의 격차를 조금씩, 그리고 정교하게 좁혀가기 시작했습니다. 북유럽 신화와 현실 세계의 불균형을 셰익스피어식 서사극으로 변주시킨 [토르]의 자연스러운 모습은 왠지 날로 먹을것만 같았던 [어벤져스]가 더 이상 팬서비스용 이벤트가 아니라 제대로 준비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지요. 반면 [토르]의 이러한 완성도는 마지막 주자인 [퍼스트 어벤져]에 대한 우려를 오히려 조금 더 키웠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퍼스트 어벤져]의 원제는 [캡틴 아메리카: 퍼스트 어벤져]입니다. 영화제목이 수입되면서 다른 제목으로 바뀌거나 부제를 떼어 버리는 일은 있어도, 이렇게 원제목을 빼고 부제만을 남겨 놓는 경우는 보기 드문 일입니다. 그만큼 '캡틴 아메리카'라는 캐릭터와 원작이 가진 아킬레스건은 분명합니다. 이 인물이 너무나도 미국적인 캐릭터라는 것이지요. 태생부터도 캡틴 아메리카는 국가주의적인 색체가 너무 강합니다. 전쟁에 자원하고 싶어 안달난 청년이 성조기를 노골적으로 반영한 코스튬을 입고 활약하는 내용이란 말입니다. 미국 내에서는 통할 수 있을 지언정, 글로벌적인 슈퍼히어로가 되기에는 선천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는거죠.

그래서일까요? [퍼스트 어벤져]는 캡틴 아메리카의 미국적인 느낌을 지우기 위해 사력을 다한 흔적들이 여기저기 널려있습니다. 우선 그의 코스튬 부터가 원작의 그것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않습니다. 히틀러를 때려잡기 위해 기꺼이 조국에 투신했던 원작의 스티브 로저스는 조금 다른 이유로 입대를 희망합니다. 바로 '불량배들을 혼내주고 싶을 따름'이라며 자신의 참전의사를 교묘히 포장하는데 여기에는 유약해서 늘 맞고 다녔던 자신의 육체적 콤플렉스가 투영되어 있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 Marvel Studios/ Paramoun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물론 애국을 강조하는 코드가 반영되어 있긴 합니다만 그것이 미국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반 나치'적인 입장에서 조명함으로 미국만세의 부정적 느낌을 희석하려 합니다. 특히나 관객들의 조롱거리가 될 수 있는 원작의 요소들(네, 역시나 그 바보스런 코스튬을 포함해)을 스스로가 자조섞인 농담거리로 전락시킨 국채 홍보장면은 아주 뛰어난 발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애초에 관객들이 공격할 수 있는 여지를 차단시켜 버린 것이죠. 이것이 바로 마블 히어로 무비의 진화하는 모습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원작이 지닌 약점을 지워나가면서 이를 [어벤져스]와 연결하는 과정에 있다보니, 정작 영화로서 드러내야 할 명확한 장점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캡틴 아메리카라는 캐릭터가 원래부터 슈퍼솔저 프로젝트에 의해 탄생된 '강화인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어중간한 성격이다보니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이긴 한데, 내러티브의 형식이나 원작의 캐릭터들을 취급하는 면에 있어서도 너무나 무난한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이드킥인 버키(설정이 변해도 한참 변한..)나 메인 악당인 레드 스컬의 존재감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 것도 조금은 아쉽습니다.

전체적으로는 2차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전쟁영화의 포맷을 가지고 있고, 그러한 복고적인 느낌을 아주 잘 살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만 상대적으로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기에, 또한 다른 마블 히어로 무비와의 비교선상에서 볼 때 액션과 비주얼의 임팩트가 많이 약한 편입니다. 일반적으로 정형화된 이야기를 커버하기 위해 비주얼의 힘을 빌리기 마련인데, [퍼스트 어벤져]는 굳이 그럴 생각은 없어 보입니다.

ⓒ Marvel Studios/ Paramoun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배우들의 연기도 대체적으로 무난합니다. 주연인 크리스 에반스는 캡틴 아메리카에 제대로 어울리는 모습으로 등장해 주었고, 토미 리 존스, 스탠리 투치 같은 배테랑들의 연기도 안정적입니다. 아, 고전적인 매력을 풍기는 히로인 해일리 앳웰의 활약도 빼놓을 순 없겠네요.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했던 레드 스컬 역의 휴고 위빙은 그 역할에 있어서 안타까운 면이 있는데, 기존 마블 히어로물에서 악당들을 다룬 방식을 생각해보면 이번 작품에서는 너무 스테레오 타입으로만 그린 나머지 배우가 지닌 아우라가 제대로 표현되지 못하더군요.

여러 가지 단점들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퍼스트 어벤져]는 괜찮은 히어로 물입니다. 무난하면서도 싱거운, 어딘지 모르게 [어벤져스]를 위한 전반적인 프리퀄같은 성격으로서 단일 영화로서는 많은 부분을 희생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아마도 이 작품에 대한 평가는 [어벤져스]가 나온 시점에서 조금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P.S:

1.원래 '캡틴 아메리카'는 스탠 리 영감님의 작품이 아닙니다. 원작은 조 사이먼과 잭 커비에 의해 탄생했죠. 그럼에도 이 영화에서 스탠 리의 까메오 출연이 있습니다.

2.이 작품은 무려 5번째로 제작되는 '캡틴 아메리카' 실사판입니다. 1940년대 시리얼무비와 1979년 TV영화 2부작, 그리고 1990년의 괴작 [캡틴 아메리카]가 있었죠.

3.파라마운트에서 마지막으로 제작되는 마블 히어로 영화입니다. [어벤져스]와 [아이언맨 3]에 대한 판권은 이제 디즈니로 넘어갔습니다.

4.이렇게 너무 무난해서 밋밋한 느낌을 주는 [퍼스트 어벤져]의 에너지는 엔드 크래딧이 다 끝나고 등장하는 쿠키씬에서 불타오르게 됩니다. [어벤져스]를 위한 지금까지의 여정이 총 집결되는 마지막의 쿠키씬을 보면서 내년 여름이 이렇게까지 기대될 줄은 아마 상상도 못하셨을 거라 생각됩니다. 게다가 내년엔 [다크 나이트 라이지즈]도 돌아옵니다. 흐미~~~

5.스포일러가 될까봐 어떤 장면이라고는 말 안하겠습니다만 이게 12세 관람가가 맞는지 의심할 만큼 잔혹한 씬이 있더군요.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당황했습니다. 명색이 슈퍼히어로물인데 이런 장면이 들어갈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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