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감탄사를 연발시켰던 픽사의 근황은 조금 실망스럽습니다. 아마 그런 경향은 [카 2]에서 시작된 것 같습니다. 이후 [메리다와 마법의 숲], [몬스터 대학교] 등 어딘지 픽사스럽지 않은 범작으로 주춤거렸죠. 작년의 [인사이드 아웃]은 여전히 녹슬지 않은 재치를 보여준 작품이긴 했으나 전성기 픽사의 역량에는 조금 못 미치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올 해 극장가 애니메이션의 첫 포문을 연 [굿 다이노]는 이미 북미에선 작년에 개봉해 평가를 마친 작품입니다. 결과는 놀랍게도 픽사 사상 처음으로 손익 분기점을 넘기지 못한 실패작이 되고 말았지요. 조금은 충격입니다. 외형상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룡 캐릭터를 가지고도 흥행에 실패한 셈이니까요.
[굿 다이노]는 픽사다운 기발한 설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일종의 What if 스토리로서 커다란 운석이 지구를 벗어나 공룡이 멸종되지 않았다는 것을 가정하고 진행되는 이야기지요. 살아남은 공룡들은 나름대로 진화해 직업관을 가진 사회를 형성합니다. 주인공 알로의 가족은 농사로 생계를 유지하는 집안이지요.
삼형제 중 막내로 태어나 가장 겁많고 덩치가 작은 알로는 형들과는 달리 발달이 조금 늦은 녀석입니다. 어느날 알로는 곡식 창고에서 음식을 훔쳐먹던 인간 아이를 발견하나 겁을 먹고 그냥 놔주는 바람에 아버지에게 혼이 나지요. 아들에게 엄한 교육을 하기로 맘먹은 아버지는 알로를 데리고 인간 아이를 추적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됩니다.
졸지에 편모슬하에 놓이게 된 알로는 다시 찾아온 예의 그 아이를 쫓아가다가 그만 급류에 휘말려 길을 잃습니다. 이제부터 인간 아이와 공룡의 기묘한 여정이 시작되는 거지요.
[굿 다이노]의 내러티브 자체는 전형적인 아동용 로드무비의 형식을 띕니다. 굉장히 노멀하고 큰 기복이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저 그런 디즈니 애니메이션처럼 보이는게 사실입니다. What if 스토리이긴 하지만 애니메이션의 현실 파괴는 언제든지 용인되는 것이 관례이므로 이러한 설정이 큰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캐릭터의 매력도 2% 부족한 편입니다. 우선 알로의 캐릭터가 너무 클리셰적인 주인공이라서 기존 픽사 작품에 비하면 신선도가 다소 떨어지는 편입니다. 오히려 인간이지만 강아지와 치환되는 스팟이 훨씬 더 픽사다운 캐릭터로 보입니다. 인간이 공룡보다 더 우월하고 똑똑한 존재라는 명제를 뒤집은 건 꽤나 유쾌하더군요.
일단 여기까지의 평은 어디까지나 성인 관객으로서의 입장입니다. 사실 그간 픽사 애니메이션이 아이들보다는 성인들에게 더 울림을 주는 작품을 많이 만들긴 했지요. 이젠 어느 정도 연령층을 낮추는 전략으로 가는 건 아닐지 살짝 불안한 느낌도 듭니다. 전체적으로 무난한 완성도를 보이는 작품이지만 어른들까지 공감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듯 합니다.
P.S:
1. 최근 픽사가 모험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앞으로의 라인업을 보면 죄다 기존 작품들의 속편으로 채워놨더군요.
2.'The Good Dinosaur'를 '굿 다이노'로 꼬리 자른 생쥐마냥 만들어 놓은 건 도대체 누구의 아이디어였을까요?
3.티라노 사우르스를 악당이 아닌 좋은 카우보이 역할로 설정한 건 참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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