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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작열전(怪作列傳)  No.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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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잠시 게임 얘기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1990년대 초, 컴퓨터 게임계를 지배했던 [윙 커맨더]를 아십니까? 루카스 아츠사의 [엑스-윙]과 더불어 비행시뮬레이션 게임 시장을 양분했던 [윙 커맨더]는 엄청난 인기를 모으며 매니아들을 양산했던 초인기 베스트셀러였습니다. [윙 커맨더]가 끼친 영향이 어떠했는가 하면, '[윙 커맨더]의 차기작이 다음 PC의 업그레이드 시기를 결정한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이는 속설에 그친 것이 아니고 실제로도 그랬습니다.

ⓒ Origin Systems, Inc. All rights reserved.

전설적인 PC게임, 윙 커맨더. PC사양의 표준을 바꿔놓은 대작이었다.


[윙 커맨더]는 당시 기준으로서는 최신 기술을 도입한 방식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평균 PC사양을 훨씬 능가하는 작품이 되어 버려서 도저히 기존 PC로는 버틸 수 없었던 것이지요. 이때부터 '메모리 확보'의 개념이 생기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게다가 모노화면이 주류였던 모니터 시장 역시 VGA 컬러로 바꾸게 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뛰어난 그래픽을 자랑했던 [윙 커맨더]는 3편에 들어와서 '인터렉티브' 방식을 도입해 또한번 PC 게임 시장의 지각변동을 일으켰습니다. 실제 헐리우드 배우들을 캐스팅해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비주얼을 보여주었던 겁니다. 이는 PC게임에 헐리우드 시스템을 도입한 거의 최초의 시도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 Origin Systems, Inc. All rights reserved.

인터렉티브 방식의 도입. 게임에 영화를 결합한 획기적인 작품 [윙 커맨더3,4]


놀랍게도 [윙 커맨더] 3편에 캐스팅 된 배우는 [스타워즈]의 '루크 스카이워커'로 유명한 마크 해밀이었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얼굴을 내비친 그는 [윙 커맨더 3]에서 주인공 크리스토퍼 블레어로 등장하며 열연을 펼칩니다. 그리고 조프리 톨윈 제독 역에는 명배우 말콤 맥도웰이 등장합니다. 게다가 타가트 장군으로는 [레이더스]의 살라, [반지의 제왕]의 김리 역으로 알려진 존 리스-데이비스가 출연했지요. 그밖에 당시로서는 무명이었지만 최근 [포세이돈] 등에서 주연급으로 성장한 조쉬 루카스 등 낯익은 배우들의 얼굴도 보실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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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윙 커맨더 3]에서 크리스토퍼 블레어로 열연을 펼친 마크 해밀.


아무튼 무명 배우가 아니라 헐리우드의 메이저급 배우들이 게임속에 등장한다는 것은 당시 게임 유저들에게 있어서 엄청난 빅뉴스였습니다. [윙 커맨더]의 팬이 아니어도 마크 해밀이나 말콤 맥도웰을 보기위해 게임을 구입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니, [윙 커맨더]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이러한 전력은 매우 유효했기 때문에 [윙 커맨더 4]에도 전작의 출연자들을 그대로 등장시킴으로 다시금 그 인기를 이어가려 했는데, 이 작품에는 무려 마크 다카스코스까지 합세합니다.

이렇게 승승장구했던 [윙 커맨더]는 1996년 [윙 커맨더 아카데미]라는 제목으로 TV판 애니메이션이 제작되어집니다. 이 애니메이션은 총 13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작품으로서 게임판 [윙 커맨더 3]의 스핀오프였지요. 바야흐로 [윙 커맨더]라는 작품이 게임을 떠나 본격적인 미디어 믹스 형태로 확산되는 순간이었습니다.

ⓒ Universal Cartoon Studios. In Association With Origin Systems, Inc. All rights reserved.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윙 커맨더 아카데미]


시간이 흘러 [윙 커맨더]는 드디어 헐리우드 제작자들의 눈에도 들게 되었는데요, CG 기술이 제법 발전했던 1999년에 드디어 이 작품은 세상의 빛을 보게 됩니다. 영화판 [윙 커맨더]는 게임 [윙 커맨더]의 프로듀서이자. 감독인 크리스 로버츠에게 모든 것을 올인하기로 합니다. 애초에 게임 프로듀서였지만 [윙 커맨더 3,4]를 통해 유명 헐리우드 배우까지 능수능란하게 콘트롤하는 그의 연출력을 높이 평가한 덕분이었지요.


영화판 [윙 커맨더]는 이례적으로 원작게임의 감독이 영화의 감독을 겸한 흔치않은 기록을 남긴 작품이기도 합니다. 크리스 로버츠는 이 작품에서 감독과 동시에 각본, 그리고 영화속의 까메오로 출연하기까지 하지요. [마스크]로 깜짝 히트를 기록한 토드 모이어가 제작하고 [제 5원소]의 티에리 아보가스트가 촬영을 담당했으며 [스타쉽 트루퍼스]의 크리스 브라운이 특수효과를 담당하는 등 제작진들도 꽤나 장래가 유망한 스탭으로 이루어졌습니다.

ⓒ Universal Pictrues. In Association With Origin Systems, Inc. and The Carousel Picture Company. All rights reserved.


한편, 아쉽게도 게임에서 블레어 역을 맡았던 마크 해밀은 영화에서 동일한 역할을 맡지 못했습니다. 내용상 신참내기 파일럿인 블레어를 연기하기엔 그의 나이가 다소 부담이 되었던 것이지요.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지 않는 조건으로 "멀린"의 목소리 연기에 참여하긴 했지만 마크 해밀은 사실상 이 영화에서 제외된 셈입니다. 톨윈 제독역에는 원래대로 말콤 맥도웰이 내정되어 있었지만 그는 당시 TV시리즈물 [판타지 아일랜드]에 출연하고 있었고, 도저히 스케줄을 맞출수가 없어 이 역할을 고사하게 됩니다.

[윙 커맨더] 게임의 성공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던 이들 주연 배우들의 불참은 이 영화의 성공여부를 매우 불투명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들을 대신해 들어온 배우들은 거의 대부분이 이제 갓 주연을 맡게 된 신인이거나 만년 조연배우들이었으며, 그나마 얼굴이 알려진 체키 카료나 유르겐 프록나우 등의 중견배우들은 대부분 영화속 악역으로 등장했던 '비인기 배우'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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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영화는 [윙 커맨더]의 아버지인 크리스 로버츠의 천재성에 모든걸 걸어야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제작자들의 바램과는 달리 [윙 커맨더]는 재앙에 가까운 선고를 받게 되지요. [윙 커맨더]가 얼마나 철저히 관객들로부터 외면받았는지 알려주는 단적인 예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윙 커맨더]와 함께 개봉했던 작품은 [윙 커맨더]를 포함해 모두 3편이었는데, 이 영화들에서만 앞으로 개봉될 '어떤 영화'의 예고편이 상영되었습니다. 상당수의 관객들은 오로지 이 영화의 예고편을 보기위해 [윙 커맨더]를 찾았고 예고편이 끝난 후에는 미련없이 극장문을 박차고 나왔다고 합니다. 이 예고편의 주인공이 누구냐고요? 바로 조지 루카스가 17년만에 선보인 [스타워즈 에피소드1: 보이지 않는 위험] 이었습니다. 실로 [윙 커맨더]의 굴욕이라 할 만하지요?

ⓒ Lucasfilm Ltd. All rights reserved.

1999년 최대 화제작 [스타워즈 에피소드1: 보이지 않는 위험]


[윙 커맨더]는 지구인과 킬라시 종족의 우주전쟁을 배경으로 신참 비행사 크리스토퍼 블레어(프레디 프린즈 주니어 분)가 지구 방위군 전투기지인 타이거 클로에 전령을 가져 오면서 시작됩니다. 어머니가 필그림 종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대원들을 반감을 산 블레어는 그나마 자신을 공정하게 대해주는 미모의 직속상관 엔젤(세프론 버로우스 분)에게 마음이 끌리게 되면서 어쩌구 저쩌구... 결국엔 지구를 구하게 된다는 이야기 입니다. ㅡㅡ;;;

위의 간략한 스토리 요약으로 모든 것이 설명 가능한 [윙 커맨더]는 게임에서 그토록 매력적이었던 이야기들을 유아적인 수준으로 전락시키며 흥행참패를 자초하고 말았습니다. 비행선들이 날아다니는 특수효과는 지금봐도 별로 떨어지지 않는 훌륭한 수준이지만, 정작 이러한 장점이 전혀 부각되지 못한채 마치 TV용 영화의 한 에피소드를 보는듯한 정체된 스케일 속에서 영화는 이리저리 방황합니다.

킬라시 군의 침공에 맞서는 지구 방위군, 그 중에서도 블레어의 활약이 중심을 이루지만 손에 땀을 쥐게하는 긴장감이나 관객들을 열광시킬 만한 대규모의 전투씬은 온데간데 없고 지루하기 서울역에 그지없는 작위적인 영웅만들기만이 분주하게 이루어질 뿐입니다. 감독인 크리스 로버츠는 제작사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영화를 만들어 냈지만, 역시 게임 제작과 헐리우드 영화를 만드는 것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뼈져리게 느꼈을 것입니다. 결국 [윙 커맨더]는 그가 연출한 처음이자 마지막 영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윙 커맨더]는 그냥 게임계의 전설로만 남아 있어야 했습니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게임같은 이야기만으론 아무리 SF영화의 장르적 어드벤티지를 가졌다 하더라도 관객에게는 어필할 수 없음을 몸소 증명할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뭐 하긴 게임을 영화로 만든 작품치고 제대로 된 작품이 없긴 합니다만 그래도 [윙 커맨더]는 SF문학에 버금가는 스케일을 가졌던 작품인지라 더욱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윙 커맨더]에게 굴욕을 안겨주었던 [스타워즈 에피소드1]역시 흥행과는 별개로 평론가들의 혹평을 들었다는 것일까요. 어찌되었건간에 1999년 SF영화의 진정한 강자였던 [매트릭스]의 질주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 [윙 커맨더]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Universal Pictrues. In Association With Origin Systems, Inc. and The Carousel Picture Company.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 참고 스틸: 윙 커맨더 1,2,3,4 (ⓒ Origin Systems, Inc. All rights reserved.), 윙커맨더 아카데미(ⓒ Universal Cartoon Studios. In Association With Origin Systems, Inc. All rights reserved.), 스타워즈 에피소드1(ⓒ Lucasfilm Ltd.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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