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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편열전(續篇列傳) No.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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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우연히 집어든 만화책 한권에 뒤통수를 맞은듯한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 저는 그랬습니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20세기 소년'을 보는 순간 말이죠. 일개 만화가 웬만한 영화보다 더 심장을 죄어오는 스릴을 선사하다니, 이게 가능한 일인가 싶은 생각에 한동안 멍~ 했더랬습니다.

예상을 뛰어넘는 탄탄한 구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소년만화의 기본공식을 완전히 탈피한 이 작품의 매력을 비단 저만 느낀건 아니었나봐요. 한국의 봉준호 감독도 만약 기회가 된다면 '20세기 소년'의 영화화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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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20세기 소년' 등의 일본 만화가 우라사와 나오키를 무척 좋아한다. 누가 나보고 '20세기 소년'을 영화화하면 잘 할 것이라는 소리도 했다. 비슷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생각도 있다. 이야기를 그렇게 풀어야 한다면 시리즈물도 가능하다."

- 봉준호 감독




실제로 사이더스 사의 차승재 대표와 봉준호 감독은 '20세기 소년'의 영화화 판권을 얻기 위해 일본측과 협상을 시도합니다만 일본측에서는 '연재가 진행중이므로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합니다. 하지만 실제 이유는 좀 다른 것이었는데요,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큰 성공을 거두자 일본측에서는 자국 베스트셀러 만화의 영화화 판권을 한국측에 판매하지 말자는 일종의 암묵적 합의를 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안타깝게도 봉준호 감독의 [20세기 소년]은 판권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못하는 바람에 좌절되고 맙니다.

물론 어느 나라에서 영화화를 하던간에 '20세기 소년'은 영화화하기엔 스케일이 너무 크다는 부담감이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여기서의 스케일이란 블록버스터의 개념만이 아니라 2세대를 걸친 긴 시대를 아우르는 시간적인 배경을 가리키는 것인데요, '20세기 소년'의 장점이 세세하게 살아있는 이야기 속의 디테일과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치밀한 플롯인 점을 감안하면 2시간에 압축해서 표현하기엔 상당한 무리가 따르는 일이었죠. 언젠가 모 영화사이트에서 '20세기 소년'의 영화화에 대한 토론이 벌어졌을때 저는 '원작이 8권으로 완결되는 [올드보이]와는 상황이 다르니만큼 차라리 3부작 구성으로 하면 또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의견을 남긴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얼마 안있어 일본측에서 [20세기 소년]을 3부작으로 영화화하겠다는 발표가 나오더군요. 문제는 그 많은 경쟁자들을 뚫고 감독으로 선임된 인물이 츠츠미 유키히로라는 점이었지요. 영화, 드라마는 물론이고 각종 버라이어티 쇼나 광고, 뮤직비디오, 심지어 연극에 이르기까지 영상매체에는 손을 안댄 것이 없는 사람인 츠츠미 유키히로는 자신이 만든 영화의 장르에 있어서도 무척 다양한 패턴을 보여주었는데요, 이러한 잡식성 연출의 이력뿐만이 아니라 그를 가장 독특한 감독으로 특징짓는 한가지 사실은 영화의 제작속도가 가히 '초속급'이라는 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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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자: [20세기 소년] 원작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츠츠미: 웅대한 긴 이야기 안에서, 개인적인 소소한 일로부터 세계관이 크게 변화되는 과정이 여러가지 캐릭터의 시점에서 다각적으로 이야기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장렬한 이야기이지요.


 

2006년부터 그는 1년에 영화를 3편씩 공개하는 기염을 토하는데 이는 영화 한편당 제작기간이 4개월이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심지어 [20세기 소년]이 3부작으로 결정난 상황에서 다른 감독 같으면 그 3부작에 올인해도 시원찮을 판국에 그는 [20세기 소년: 강림]을 내놓는 와중에서도 [환상의 야마다이국]과 [은막판 초밥 왕자]를 연출하는 추진력을 보여줍니다. 자, 이쯤되니 한국의 남기남 감독급의 엔진을 탑재한 츠츠미 감독의 [20세기 소년]이 어떤 모습을 띌 것인지 대충 감이 오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실제로 [20세기 소년: 강림]이 개봉했을 때 관객의 반응은 제각각이었습니다. 이만하면 괜찮다는 평도 있었지만 원작의 아우라를 넘어서기에는 실사화라는 프로젝트가 너무 버거워보인다는 반응도 있었죠. 사실이지 [20세기 소년: 강림]은 원작만화의 느낌과 이벤트를 아주 충실히 따라가려한 흔적이 역력합니다. 비록 원작의 일부 내용을 축약하는 것이 불가피한 상황이었지만 원작에는 꽤 근접한 작품이었다는 얘기죠.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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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浦沢直樹 スタジオナッツ/小学館 ⓒ 2008映画「20世紀少年」製作委員会.


만화에 충실한 영화라는 것은 얼핏 듣기엔 괜찮아 보이지만 그 의미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만화적인 캐릭터 또한 실사로 구현된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입니다. 만화같은 영화가 될 때 그 영화는 우스꽝스러워 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덕분에 [20세기 소년: 강림]은 원작만화 캐릭터의 헤어스타일과 분위기, 소품, 의상 등을 매우 충실히 따라하고 있지만 정작 그러한 높은 싱크로가 오히려 영화를 싸구려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마치 코스프레 놀이를 하듯 영화가 가벼워지는 느낌을 들게 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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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만화와 위화감 없는 캐스트도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배우 모두가 만화를 제대로 연구하면서, 그 세계에 유기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연기해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우라사와 나오키


원작 가운데서 가장 숨막히는 순간의 정점을 이루는 '피의 그믐달' 사건에서 결말을 낸 [20세기 소년: 강림]은 원작만화의 모든 것을 가져왔음에도 절반의 성공밖엔 거두질 못합니다. 일본에서는 흥행에 크게 성공했지만 한국에서는 참패를 했거든요. 원작에 대한 인지도나 인기는 한국도 일본 못지 않았는데도 말이지요.

자, 그렇다면 예정된 수순이었던 속편 [20세기 소년: 마지막 희망]은 어떨까요?

‘피의 그믐날’로부터 15년 후인 서기 2015년, 성장한 칸나를 중심으로 멤버가 올 체인지 되는 시점에서 시작하는 [20세기 소년: 마지막 희망] 역시 1편에 비해 그다지 큰 파격성을 보여주지는 못합니다. 아니 오히려 1편보다 더욱 코스프레 놀이에 열중하는 듯 해요. 스토리는 여전히 원작의 발자취를 충실히 밟아가는 한편 캐릭터의 싱크로에만 엄청 신경을 쓴 흔적이 엿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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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浦沢直樹 スタジオナッツ/小学館 ⓒ 2009映画「20世紀少年」製作委員会.


문제는 3부작에 대한 압박의 강도가 1편에 비해 더 강하게 느껴진 탓인지 축약의 정도도 1편보다 심하고, 굉장히 급하게 달려가는 느낌이 듭니다. 일례로 쇼군의 탈출장면 같은 경우는 그 자체만으로도 한 편의 훌륭한 탈옥영화가 될 수도 있을법한 매력적인 에피소드이지만 정작 영화상에서는 그냥 스쳐 지나가는 정도로만 간단하게 언급됩니다.

또한 2편에서부터 메인 캐릭터로 등장하는 칸나의 경우는 더욱 아쉽습니다. 그녀가 주인공으로서 활약할 수 있는 개연성이 충분히 주어지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1편의 주인공 켄지의 공백을 메울만큼의 캐릭터로서 발전하지 못한 마당에 최후의 히든카드가 되어야 할 켄지가 벌써부터 등장하면서 영화가 마무리 된다는 점은 이 영화가 3부작으로 가는 단순한 징검다리 이상의 역할을 하기에는 무리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3부작이라는 분량은 애초의 우려처럼 원작의 내용을 충분히 소화하기엔 너무 짧았던 것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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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浦沢直樹 スタジオナッツ/小学館 ⓒ 2009映画「20世紀少年」製作委員会.


[20세기 소년: 마지막 희망]의 가장 큰 문제는 원작의 영화화라는 과정에서 무엇인가 고심한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츠츠미 유키히로 감독의 개성은 드러나지 않는데다 원작에서 큰 매력으로 와닿았던 스릴러적 요소가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밋밋한 연출은 오히려 나름대로의 장르적 방향성을 추구했던 [철인 28호]나 [캐산], 혹은 원작과 전혀 다른 결말로 독자적 노선을 갔던 [데쓰노트]의 시도보다도 소심하게 느껴집니다.

이제 [20세기 소년] 3부작은 마지막 한편의 개봉만을 남겨놓고 있습니다. 사실 1편의 흥행실패로 2편의 개봉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늦게나마 한정기간 개봉이라는 초라한 모습으로 공개된 마당에 제때에 3편을 접할 수 있을지 미지수이지만 1,2편과의 차별성을 두지 못한다면 비싼 돈 들인 코스프레 3부작이라는 오명을 벗어나기 힘들 듯 합니다. 그러니까.. 봉준호 감독에게 맡겼어야죠.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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