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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 - 강우석 감독의 가장 그럴듯한 상업영화

영화/ㅇ 2010. 7. 15. 09:27 Posted by 페니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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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점부터 분명히 밝혀야겠다. 나는 개인적으로 강우석 감독의 작품에 대해 탐탁치 않게 여기는게 사실이다. 그를 충무로의 흥행메이커로 만들어준 [투캅스]가 프랑스의 빅 히트작 [마이 뉴 파트너]를 노골적으로 베낀 작품이었음에도 '단지 참고만 했을뿐 표절은 아니'라는 강우석 감독의 뻔뻔함에 이미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었을런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후로 그가 추구하는 상업영화의 세계는 본질적으로 무언가 나와는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지배적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내가 연재초반부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던 '이끼'의 영화화를 강우석 감독이 맡겠다고 했을 때 몰려든 절망감의 이유 말이다. 아직 영화가 발표도 안된 상황에서 작품에 대해 미리 선입견을 갖는 것만큼 나쁜건 없다만 그래도 개봉을 기다리는 내내 원작의 팬으로서 늘 불편함이 따라다녔다. 캐스팅은 좋았다. 윤태호 작가가 대놓고 박해일을 모델로 했다는 류해국 역할의 캐스팅을 비롯해 '왜 최주봉이 아니냐'며 말들이 많았던 이장 역의 정재영 마저도 나는 맘에 들어했다. 가장 꺼림직했던 건 역시 연출자인 강우석 감독이었던 거다.

영화를 다 보고 난 이 순간, 나는 조금이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오해는 마시라. 나는 아직도 강우석 감독이 [이끼]를 고른 건 자기에게 맞지 않는 작품을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존에 원작 웹툰을 바탕으로 신통찮은 모습만을 보여주었던 한국 영화계의 징크스를 [이끼]는 어느정도 시원하게 날려 버렸다. 일각에서 들려오는 '원작의 팬들이라면 불만이겠지만 영화를 먼저 본 관객은 만족스러울 것'이라는 평에도 나는 동의하고 싶지 않다. [이끼]는 분명 원작의 팬들이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을만한 스릴러 영화다. 확실히 [이끼]는 그저 원작의 틀을 고스란히 영상으로 옮긴 '코스튬 플레이'에 만족하는 허접한 작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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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네마서비스, 렛츠필름. All rights reserved.


그럼 본격적으로 영화 [이끼]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자. 영화는 예상을 깨고 원작에서의 회상씬을 서두에 두는 모험을 감행한다. 여기에 영화 [이끼]의 모든 성격이 드러난다. 이로서 얻는 득과 실은 무엇일까. 먼저 득이라 함은 방대한 원작의 내용을 관객들이 보다 읽기 편리하도록 요리했다는 점이고, 실이라 함은 원작이 가진 보다 복잡한 스토리 텔링과 디테일한 내러티브의 참맛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강우석 감독의 스타일이고 그는 어떤 것이 상업적으로 더 득이 될 것인가를 판단한 듯 하다. 결과적으로 원작의 팬들이 불만을 품을 것이라는 우려는 여기에서 기인한다. 영화 [이끼]는 원작의 매력적인 요소들을 너무 쉽게 상업화 시켰다. 하지만 반면 이러한 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끼]의 상업적 완성도와 대중적인 저변을 더 확대해 나갔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이끼]의 원작이 강우석에게 맞지 않는 작품이었다고 보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원작인 '이끼'는 대한민국 내부의 썩을대로 썩은 모든 부조리의 축소판이자 원죄의 마을에 감춰진 치부를 들추는, 대단히 밀도가 높고 사회성이 짙은 작품이었다. 그리고 원작의 성격은 매우 건조하며 '날것의 느낌'이 생생하다. 애당초 상업영화로 닳고 닳은 감독에게 어울릴 만한 영화가 아니었다는 얘기다. 강우석 감독도 이 점을 스스로가 인식하고 있는 듯 하다. (오히려 이걸 모르고 있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는 영화에서 버릴것과 건질것, 그리고 웹툰에서 보여지지 않은 다른 부분들을 새롭게 추가함으로 영화로서의 매력을 살리려 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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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네마서비스, 렛츠필름. All rights reserved.


나는 이 말에 어느정도 진정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가 원작에서 가져온 것과 버린건, 그리고 새로 추가한 것은 모두 그의 상업영화 스타일과 맞물려 있다. 이게 불만이라면 더 이상 할말은 없다. 관객이 번짓수를 잘못 찾은거다. [이끼]는 철저하게 '강우석표 오락영화'니까. 그리고 여기서 조금 더 칭찬을 해주자면 지금까지 강우석이 만든 작품들 가운데서 가장 그럴 듯 한 상업영화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원작이 함유하고 있던 스토리 텔링의 매력이 워낙 강렬했기 때문에 상당수 보완효과를 얻어낸 것이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원작이 지닌 캐릭터의 힘은 영화에서도 여전하다. 싱크로율 120%의 류해국(박해일 분)이나 반대여론 속에서도 꿋꿋이 역할을 수행해 온 이장(정재영 분) 모두 주연급으로서의 존재감을 확실히 다지고 있다. 예상외로 류목형(허준호 분)의 비중이 높아진 것도 꽤 좋은 선택이라고 보여진다. 다만 불만이라면 꽤나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주변 캐릭터의 변화랄까. 특히 코믹 캐릭터로 변화된 덕천(유해진 분)의 캐릭터는 원작과 사뭇 다른 느낌이어서 원작의 명장면(창문 하나를 두고 류해국과 마주보는 야간씬)을 전혀 살려내지 못했다. 류해국과 박검사(유준상 분)의 미묘한 애증관계를 모두 삭제하고, 단순한 버디 무비 스타일로 풀어나가려 한 것도 각색과정에서의 귀차니즘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 Yoon Taeho/ Jaedam books. All rights reserved.

원작 '이끼'의 한장면. 비바람이 몰아치는 한밤중에 창문하나를 놓고 해국과 덕천이 마주보는 이 장면은 오싹함이 그대로 전달되는 명장면이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덕천의 캐릭터가 지나치게 코믹일변도로 변화된 나머지 긴장감과 미장센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원작의 결말과 사뭇 다른 엔딩에 있어서도 조금은 호불호가 갈릴 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에서 감독이 너무 욕심을 부렸다고 보는데, 본인 스스로가 원작만큼은 아니어도 일종의 '열린 결말'식으로 관객이 해석하는 것에 대해 만족해하는 걸로 봐서는 이 이상의 결말을 기대하는 것은 애시당초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원작을 어떻게 요리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감독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모든 이들이 크리스토퍼 놀란처럼 '배트맨'에서 [다크 나이트]를 이끌어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적어도 강우석 감독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가장 자신있는 쪽을 택했고 그 결과가 썩 나쁘지 않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2시간 40분을 버티기 위해 곳곳에 위치한 유머의 시도 역시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스릴러라는 장르적 특성에도 불구하고 몰입도를 이만큼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에 나는 칭찬을 하고 싶은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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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네마서비스, 렛츠필름. All rights reserved.


그렇다고 아쉬움이 남지 않는 건 아니다. 원작의 풍부한 요소들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몇가지만을 추려내 디테일을 모두 죽였다는 것이나 굳이 영화에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폭력성을 부각시켜(이 영화는 장면이 아닌 분위기만으로도 충분히 섬뜩함을 줄 수 있다고 생각되므로), 마치 대단한 것을 지켜내기 위해 '청소년 관람불가'등급도 마다하지 않은냥 페이크를 쓰는 모습들이 썩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 만약 당신이 이미 원작을 봤다면 영화에서 그 원작의 묘미를 기대하지 마라. 원작을 보지 않았다면 영화를 먼저 즐겨라. 그것이 올 여름 가장 뜨거운 한국영화로 떠오르고 있는 [이끼]를 즐기는 방법이다.  - 페니웨이™


P.S:

1.영화에서 강우석 사단의 단골배우들이 대거 등장하긴 하지만 유준상과 정재영은 [나의 결혼원정기] 이후 두 번째 만남이란 점에서 흥미롭다.

2.강우석 감독이 공언한 500만 관객이란 목표는 충분히 달성 가능할 듯.

3.내가 칭찬한 부분은 [이끼]가 가진 상업영화로서의 가치이지, 장르영화로서의 가치는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끼]가 스릴러 본연에 충실한 작품이냐고 묻는다면, '아니다'.


* 참고 리뷰 : 이끼 - 한국형 스릴러 만화의 방향성을 제시한 걸작




* 본 리뷰에 사용된 일러스트는 윤태호 작가님의 동의를 구해 사용한 것입니다. 아울러 본 리뷰의 모든 스틸컷에 대한 권리는 해당 저작권자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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