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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작열전(怪作列傳) No.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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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간에는 잠시 추억여행을 떠나보기로 합시다. 1960년대 당시만해도 한국은 애니메이션의 불모지나 다름없었고, 자체 애니메이션은 몇몇 CF에서 사용된 짧은 클립만을 제외하면 전무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삼성물산에서 일본 토에이의 자회사인 제일동화(第一動畵)와 계약을 맺고 합작형태(라고 쓰고는 하청이라고 읽는다)의 TV 애니메이션을 선보이게 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황금박쥐 黃金バット'라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총 52화로 제작되어 1967~1968년 요미우리 TV에서 방영한 이후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국내에서는 TBC 방송국을 통해 공중파를 타기도 했지요.

사실 저만해도 '황금박쥐'를 보고 자란 세대는 아닙니다만 그 주제가만은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어디, 어디 어디에서 나타났나~ 황금박~쥐'로 시작하는 주제가는 일본 것을 그대로 번안한 것이기는 하지만 너무나도 경쾌하고 씩씩한 멜로디로 깊이 각인되어 있지요. 이걸 또 희안하게 번안해서 '빛나는 대머리에 갈비뼈는 열두 개. 그래도 잘났다고 빤쓰만 입고 다니냐. 우주의 악당들을 쳐부셔봤냐? 아니, 아니, 매만맞고 돌아왔다, 황금박~쥐. 박쥐만이 알고 있다!' 와 같이 코믹한 노래로 불렀던 꼬꼬마 시절이 생생합니다.

ⓒ 대영동화/ Telecartoons Japan (TCJ). All Rights Reserved.


일반적으로 알려진 '황금박쥐'의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야마토네 박사의 가족과 고아소녀 마리는 고대 이집트의 무덤에서 황금빛의 해골을 발견합니다. 하지만 야마토네 박사 일행이 악당 나조에게 위협을 당하자 겁에 질린 마리가 눈물을 흘리게 되고, 이 눈물이 황금박쥐의 몸에 닿자 잠에서 깨어나 악당을 물리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비록 애니메이션으로 널리 알려지긴 했지만 원래 '황금박쥐'는 굉장히 유서깊은 작품입니다. 1930년, 흰 해골얼굴에 검은망토의 괴도가 활약하는 가두 그림연극 [검은박쥐 黒バット]가 호평을 받자, 일러스트 작가인 나가마츠 타케오는 [검은박쥐]의 마지막 편에 악역인 검은박쥐를 쓰러뜨리는 정의의 히어로로서 온몸이 황금색으로 칠해진 '황금박쥐'를 등장시키게 됩니다. 바야흐로 최초의 일본식 슈퍼히어로가 탄생하게 된 것이지요.

당시 [검은박쥐] 그림 연극의 제작에는 고토시 쿠라, 타카하시 세이조, 타나카 지로 등이 참여했지만 낮은 저작권 인식 때문인지 다양한 황금박쥐 캐릭터가 유사한 그림연극에 사용되면서 다양한 여기저기서 마구 등장하게 됩니다. 이러한 그림 연극에 사용된 '황금박쥐'의 원화들은 전쟁의 여파로 인해 지금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 '황금박쥐'가 인기를 끌 당시, 아이들이 가두 그림연극을 관람하는 모습.


이런 '황금박쥐'가 본격적으로 대중미디어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전쟁이 끝난 후인 1947년 원안자인 나가마츠 타케오가 모험활극문고를 통해 발간한 단행본이 출판되면서부터입니다. 그리고 1950년에는 스즈키 이치로가 스토리를 담당해 황금박쥐가 나치의 잔당과 대결을 벌이는 '황금박쥐: 수수께끼 편'이 대히트를 기록하면서 '황금박쥐'는 일본의 대표적인 슈퍼히어로 캐릭터로 자리잡게 됩니다. 같은해에는 시무라 토시오 감독이 만든 [황금박쥐: 마천루의 괴인 黃金バット 摩天楼の怪人]이라는 실사판 영화가 개봉되면서 '황금박쥐'의 미디어믹스 시대가 열리는 듯 보였지요.

ⓒ 大都社. All Right Reserved.


하지만 이후로 '황금박쥐'의 캐릭터 프렌차이즈는 잠시 주춤하게 되었는데, 다시 대중 미디어에 등장하게 된 것은 1966년 토에이에서 제작한 사토 하지메 감독의 실사 특촬물 [황금박쥐]에서 였습니다. 이것은 1967년에 방영되기 시작한 TV 애니메이션보다도 1년이나 빠른 일이었지요. 그럼 무려 16년만에 스크린에 등장하게 된 [황금박쥐]의 내용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어느날 천체 망원경으로 밤하늘을 관찰하던 소년 카자하야 아키라는 이카루스 행성이 진로를 변경해 지구로 향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는 곧 우주 관측소의 박사님을 찾아가 지구와 이카루스의 충돌 가능성에 대해 말하지만 박사는 증거에 집중하라며 아마추어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일축합니다. 실망해서 발길을 돌리던 아키라는 수수께끼의 괴한들에게 납치당해 처음보는 곳으로 끌려갑니다.

알고보니 이곳은 UN소속의 비밀 연구소. 펄 박사가 총 책임자로 있는 이 곳에서는 이미 이카루스의 진로변경을 관측했고, 빔캐논으로 이카루스를 박살낼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곳의 보안책임자인 야마토네(소니 치바 분)는 아키라에게 펄 연구소에 합류할 것을 요청합니다. (어차피 이카루스가 지구로 온다는 걸 알아낸 이상 꼬맹이는 영입해서 뭣에 쓰게.. ㅡㅡ)

ⓒ Toei Company. All Right Reserved.


빔병기의 핵심부품인 렌즈에 사용될 물질을 찾기 위해 파견된 특수부대의 SOS신호를 받게된  펄 박사 일행은 다급히 구출팀을 조직해 부대원들을 찾아 나서는데 그들은 지도상에 나오지 않은 의문의 섬에서 신호가 끊어졌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섬에 착륙한 일행은 이 섬이 고대 아틀란티스 대륙의 일부였음을 알게 되는데요, 곧이어 섬에 큰 지진이 발생하는가 하더니만 바닷속에서 드릴모양의 거대한 로봇이 출현해 펄 박사 일행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난데없는 적의 공격을 피해 도망치던 일행은 아틀란티스의 숨겨진 신전에 다다르게 되고, 여기서 이들은 1만년간 잠들어있던 황금박쥐를 발견하게 됩니다. 다급한 상황에서 펄 박사의 손녀인 에밀리가 물을 끼얹자 잠자던 황금박쥐는 음훼훼훼~ 하는 음흉한 웃음을 터트리며 화려하게 부활합니다. 그리고는 적들을 모두 무찌르고 자신을 깨운 에밀리에게 언제든지 위험한 일이 있으면 자신이 도와주겠노라고 약속하지요. (근데 아틀란티스 출신이 일본어를 하나?)

ⓒ KBS TV. All Right Reserved.


한편 펄 박사를 공격한 적은 '나조'라는 눈 네 개 달린 악당인데, 지구정복(어이 어이, 지구는 정복해서 뭐하려고)이라는 야심을 실현하기 위해 이카루스의 진로를 바꾼것도 바로 이 녀석이었던 것입니다. (지구를 정복하겠다는거냐, 멸망시키겠다는거냐 ㅡㅡ) 이제 나조는 펄 박사가 개발한 빔병기에 눈독을 들이고 이를 탈환하기 위해 켈로이드, 피라냐, 자칼이란 이름의 똘마니 3총사를 보내면서 펄 연구소는 위기에 직면합니다.

ⓒ Toei Company. All Right Reserved.


보신것처럼 [황금박쥐]는 마치 [아마게돈]스럽고 [딥 임팩트]틱한 단순한 스토리 구조를 지닌 작품인데요, 엉성한 플롯도 그렇긴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캐릭터 구성의 실패라고 볼 수 있습니다. 초반에 뭔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 같았던 소년 아키라는 그냥 소년1에 해당하는 단역급에 불과하며, 타이틀 롤인 황금박쥐 역시 액션히어로의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발휘하기 보다는 허접한 쫄쫄이 내복차림의 코스튬 플레이어에 더 가깝습니다. 전반적인 액션도 어설프고, 슈퍼파워에 있어서도 큰 인상을 주지 못하는 괴인스러운 캐릭터로 묘사되지요. 물론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웃음소리로 인해 미친 존재감을 발휘하긴 하지만요. 다음의 파일을 재생해서 함 확인해 보세요.



또한 악당인 나조는 마치 귀여운 텔레토비같은 부대자루인지 탈바가지인지를 뒤집어쓰고 뿌잉뿌잉한 광선을 쏴대는데, (어떻게 보면 황금박쥐가 악당같고 나조가 착한놈 같아요) 그가 지구정복을 하려는 이유나 왜 왼팔 대신 기계팔을 갖게 되었는지, 나조의 원래 정체는 무엇인지 등에 대한 설명이 생략되어 있어 영화의 전체적인 개연성이 많이 떨어집니다. 그나마 켈로이드, 피라냐, 자칼 같은 중간보스급 악당들이나 소니 치바가 열연한 야마토네 대장 같은 조연 캐릭터가 눈에 띄긴 합니다만 이런 캐릭터들의 매력을 충분히 살렸다면 더 좋은 작품이 나왔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 Toei Company. All Right Reserved.


[고질라] 이후 특촬물의 급격한 붐이 이뤄졌음에도 [황금박쥐]의 특수효과는 조잡하기가 서울역에 그지없습니다. 마치 1960년대 버전의 [우뢰매]를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당시에는 관객들이 어떻게 느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보기엔 제작연도를 감안하더라도 영화가 B급 정서에 기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듯 합니다. 그렇지만 [황금박쥐]는 부족한 가운데서도 장르물의 다양한 저변에 도전한 히어로물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높은 점수를 줄만 합니다. 아직 TV 애니메이션이 제작되기 전에 먼저 실사판으로 제작되었다는 사실도 조금 뜻밖이고 말이죠.

ⓒ Toei Company. All Right Reserved.


결국 [황금박쥐]의 개봉 후 방영된 애니메이션판 '황금박쥐'는 실사판의 주제가를 그대로 사용하고, 설정이나 캐릭터 디자인도 거의 유사하게 가져온 작품으로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게 됩니다. 뒤를 이어 '괴기스런 모습의 선한 주인공'을 컨셉으로 삼은 [요괴인간 벰, 베로, 베라]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도 '황금박쥐'의 성공 덕분이라 할 수 있었지요. 그러나 '황금박쥐'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정작 실사판 [황금박쥐]는 후속편이 제작되지는 않았습니다......마는 1991년 불굴의 명연출자인 남기남 감독과 최근 [라스트 갓파더]로 영화계를 시끄럽게 만든 장본인 심형래가 함께 작업한 [영구와 황금박쥐]에서 그 자태를 드러냅니다. 무려 시간상으로는 25년이나 차이나는 두 작품 사이에 어느 쪽이 더 완성도가 높은가를 묻는다면 뭐... 굳이 답변을 하지는 않겠습니다.

ⓒ 두울 프로덕션 All Rights Reserved



P.S: '황금박쥐'가 국내 애니메이션계에 미친 영향은 적지 않습니다. 예전에 소개한 배트맨 짝퉁물인 [검은별과 황금박쥐](바로가기)나 김청기 감독의 슈퍼히어로물 [황금날개]에서도 그 영향력을 찾아볼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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