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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작열전(怪作列傳) No.111

 

 

 


영화의 흥행을 결정짓는 요소 중 하나는 홍보전략입니다. 어떤 포스터 디자인을 내놓느냐 혹은 어떤 예고편을 내놓느냐에 따라 깊이있는 영화정보를 필요로 하지 않는 대다수 관객들을 상대로 하는 영화장사는 꽤 큰 효과를 볼 수 있지요. 저예산 영화계의 대부인 로저 코먼이 절대로 '손해보지 않는 장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이러한 영화계의 기본적인 속성을 누구보다 잘 꿰뚫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영화들을 보면 일단 포스터에 아주 많은 공을 들였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딱 포스터만 봐서는 메이저 영화인지 B급인지를 구분하기 힘들 정도죠.

그의 주특기 전략 중 하나는 메이저급 영화의 짝퉁(오늘날 어사일럼의 목버스터 전략과 비슷한) 영화를 초단기간에 뽑아내는 방법이었습니다. 가령 예를 들면 이런저죠.

스티븐 스필버그의 [죠스]가 나오면...

ⓒ Universal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이렇게 [피라냐] 같은 유사 짝퉁 영화를 만드는 식입니다.

ⓒ Roger Corman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의외로 이런 전략은 잘 먹혀서 로저 코먼은 실패하지 않는 B급 영화의 대부로 군림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좀 더 근본적인 영화철학이 있었어요. 오늘 살펴보시게 될 영화는 로저 코먼 초기의 흑백영화로서 [바다에 출몰한 피조물]이란 크리처물입니다. 일단 이 영화의 포스터를 보시면 다음과 같습니다.

ⓒ Roger Corman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뭔가 대단하고 무시무시한 괴물이 등장하는 스펙터클한 영화가 될 것 같지요? 과연 실제로도 그러한지는 좀 있다 살펴보기로 하고, 우선 이 영화는 앞서 언급했듯 로저 코먼의 짝퉁사랑 정신을 그대로 반영한 영화로서 모델이 된 작품은 1954년 잭 아놀드 감독의 괴수공포물 [해양괴물 Creature from the Black Lagoon]입니다. 이 작품은 해저 지층에서 봉인되었던 아가미 인간이 자신의 영역을 침입한 탐사대원들을 혼내주던 중 므흣한 포스를 풍기는 수영복 아가씨에게 반해 그녀를 납치해가게 되는 내용으로 다분히 [킹콩]의 내러티브를 연상시키는 영화인데요, 애너그리프 입체 방식을 채택한 입체영화로 당시 화제가 되었었습니다.

ⓒ Universal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로저 코먼의 [바다에 출몰한 피조물]은 장르적 베이스가 [해양괴물]과는 다른 위치에 있습니다. 괴생물이 등장하는 크리처 장르이긴 하지만 [해양괴물]이 다소 호러작인 장르에 기반한데 비해 [바다에 출물한 피조물]은 다분히 코미디에 가깝거든요. 이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를 살펴보면 로저 코먼의 사업적 잔머리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새삼 엿볼 수 있는데요, 그는 [흡혈식물 대소동 The Little Shop Of Horror]의 촬영을 마치고 차기작인 [지구 최후의 여인 The Last Woman on Earth]과 [혈도의 전투 Battle of Blood Island]의 촬영차 푸에르토 리코에 옵니다.

근데 여기서 코먼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즉, 푸에르토 리코에서 어떤 형태로든 '제조업'을 하면, 막대한 세금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알게된 것이죠. 여기에는 '영화를 만드는 것'도 포함되었던 겁니다. 이때 코먼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것이 있으니 바로 [지구 최후의 여인]에서 쓰고 남은 필름 조각들이었지요. '옳다구나! 이걸로 영화한편을 더 만들면 그만큼 혜택도 더 받겠지!"

그래서 그는 재빨리 각본가인 찰스 B. 그리피스를 독촉해 기존에 이미 만들었던 작품인 [벌거벗은 낙원 Naked Paradise]과 [저주받은 동굴의 괴물 Beast from Haunted Cave]의 각본을 대충 수정해서 배경만 바꾸도록 지시합니다. 각본은 단 3일만에 완성되지요. (어떤면으로는 단숨에 써내려간 각본이 뛰어난 면도 있지만 이 경우에는... 말 안해도 아시겠죠?) 원래대로라면 코먼 자신도 이 작품에서 해피 잭 모나한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할 예정이었지만 각본가 그리피스는 이 역할을 코먼이 맡기에는 너무 어려울 것이라고 만류해 결국 '괴물'의 탈바가지를 쓴 배우 로버트 빈이 두 배역을 소화하게 됩니다. 그리고 영화의 촬영은 초스피드로 진행돼 단 5일만에 완료되었습니다.

ⓒ Roger Corman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그렇게 '초날림'으로 완성된 영화의 내용은 대충 이렇습니다. 미국의 비밀 첩보원 XK150은 렌조 카페토가 이끄는 갱조직에 은밀해 잡입합니다. 근데, 이 갱조직은 쿠바의 보고를 밀수한 혐의로 추방된 쿠바인들과 손을 잡고 바다에 가라앉는 보물을 나눠갖자는 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악당이 괜히 악당이 아니죠. 두목인 렌조는 보물을 혼자 독차지하기 위해 쿠바인들을 제거합니다. 그리고는 바다에서 괴물을 만나 그렇게 되었다고 둘러대죠. (말이되나!)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괴물이 나온겁니다. 이 괴물로 인해 살놈은 살고, 죽을놈은 죽고, 결국에는 보물을 괴물이 독차지하며 끝납니다. 헐....

ⓒ Roger Corman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보시다시피 영화는 각본에서 촬영까지 8일만에 완성된 작품이니만큼 완성도가 눈뜨고는 못봐줄 정도입니다. 플롯도 없고, 괴물의 정체도 없고 목적이나 주제의식도 없습니다. 게다가 1960년대라는 시대적인 부분을 감안하더라도 괴물의 생김새는 무슨 '세서미 스트리트'의 쿠키몬스터 의상을 물에 빠뜨린 것 마냥 후즐근하고 조잡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포스터에는 한손으로 여인을 움켜쥘 정도로 큰것처럼 구라를 치더니 막상 크기는 그냥 사람보다 더 큰 정도.. 연인이 키스하는 장면을 바라보는 괴물의 표정을 보세요. 아 미칩니다.

ⓒ Roger Corman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하지만 나름 의미있는 부분도 발견할 수 있어요. 이 장면에서 사용된 바다씬은 훗날 스티븐 스필버그가 사용했던 카메라 워크와 어떤면에서는 유사합니다. 즉, 괴물의 모습을 비추는 대신 괴물의 시선에서 피해자의 모습을 바라봄으로 심리적인 공포감을 높히는 수법이지요. 아마도 영화광이었던 스필버그는 이런 B급 영화들을 통해 어떤 것이 예산을 절약하면서도 효과적인 연출을 보여줄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런 것이 또 B급 영화들이 이룬 작은 업적들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 Roger Corman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P.S:

1.이 작품의 모티브가 된 [해양괴물]은 CF감독 출신의 칼 에릭 린쉬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 될 예정입니다.

2.[차이나 타운]으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로버트 타운이 주인공인 XK150 역을 맡았습니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로저 코먼 밑에서 구른 인물이 정말 버라이어티 하지요?

3.이 영화는 본래의 '코미디'라는 장르를 숨긴채 '공포 스릴러'로 홍보되었습니다. 그 결과가 본문에 첨부한 포스터의 모습이죠. 당시 광고문구는 '잃어 버린 배의 바다에는 어떤 말못할 비밀이 있었던 것일까?'였는데, 영화를 본 관객들은 '그 비밀에 대한 답변을 내보이지 말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4.영화의 괴악스러움에도 불구하고 Legend Films에서는 2008년 이 영화를 컬러로 복원하기에 이릅니다. 대~단한 문화제 복원 나셨다 그죠?

ⓒ Roger Corman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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