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애니메이션은 욕설과 폭력, 유혈 요소가 들어있는 작품으로 청소년들은 자신의 연령이 18세가 이르기 전까지는 시청 및 관람을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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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의 왕]은 [셀마의 단백질 커피] 중 ‘사랑은 단백질’이란 에피소드로 인상적인 연출력을 보여주었던 연상호 감독의 장편 데뷔작입니다. ‘사랑은 단백질’의 원작자인 최규석 작가와는 두번째 작업인 셈이지요. 이 작품이 유독 눈길을 끄는건 국내에서는 정말로, 매우 드물게, 잔혹스릴러를 표방한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입니다. 통상적으로 애니메이션의 소비층이 10대 위주로 편성되어 있다는 국내 업계의 선입견을 고려해 보면 연소자 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돼지의 왕]의 모험수는 분명 쉽지않은 선택입니다.
[돼지의 왕]은 말하자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잔혹동화식 변주입니다.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학창시절의 좋지 않은 기억들, 소수의 지배자와 다수의 피지배자로 나뉘는 계급 사회의 축소판인 교실내의 살풍경한 모습을 담아낸 이 작품은 이러한 계급 사회의 고리가 단순히 어린 시절만이 아니라 더 큰 무대인 사회로까지 연장되고, 대를 이어 악순환을 거듭하는 것에 대한 악에 받친 설움을 표현해 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는 또다른 느낌을 줍니다. 영화는 끝까지 약자들의 편에 서질 않거든요.
이 작품이 뛰어난 것은 단순히 애니메이션의 작화가 훌륭하다던가 성우들의 연기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넘어서서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가 취할 수 있는 표현의 한계를 한참 벗어나고 있다는 점일 겁니다. 확실히 인기를 얻을만한 소재도 아닐 뿐더러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보여준 것 처럼 관객들이 내심 기대하고 있는 대리만족의 카타르시스도 안겨주지 못하는, 그야말로 불쾌함과 먹먹한 뒷맛 만을 남기는 이런 애니메이션이 한국에 또 있었던가요?
잔혹스릴러라고 해서 화면상에 보여지는 잔혹한 장면이 남발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돼지의 왕]은 심리적인 압박이 훨씬 더 강합니다. 주인공들과 유사한 트라우마를 겪으며 자랐고, 심지어 오늘날의 사회적인 계층에서도 여전히 약자의 위치에서 간신히 하루를 연명하는 대다수의 관객으로서는 이 모든 이야기가 단순히 영화속 이야기처럼 비춰지는 것만은 아니거든요. 물론 과장과 비약의 요소가 없는 건 아니지만 최근의 사회적 분위기는 대체로 [돼지의 왕]이 비추는 프레임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44초만에 매진을 기록한 본 작품의 화제성과는 달리 흥행성이 없다는 판단때문인지 상영관의 수가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는 점은 모처럼 피어나는 애니메이션 장르물의 다변화에 찬물을 끼얹는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소중한 날의 꿈], [마당을 나온 암탉]에 이어 [돼지의 왕]까지 2011년이 한국 애니메이션의 재도약을 알린 원년으로 기억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P.S: 이게 스포일러를 피해야 하는 작품인지라 이리저리 빙빙 돌려가며 말했더니 어쩐지 리뷰가 겉도는 느낌이군요. 아주 충격적인 반전이 있긴 합니다만 그 반전만으로 이 작품의 진가가 과소평가되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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