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마사무네의 원작 만화를 바탕으로 한 극장판 [공각기동대]나 이를 what if 버전으로 만든 TV판 [공각기동대 SAC]는 같은 원작을 놓고 다른 방향성을 추구했지만 모두가 나름대로 뛰어난 작품들이었습니다. 오시이 마모루는 이를 통해 사이버 펑크 문화의 한 페이지에 이름을 올렸고, 카미야마 켄지는 '공각기동대'란 타이틀에 걸맞게 공안9과라는 기관요원들 활약상에 초점을 맞춘 수사물로 탈바꿈 시켰지요.
확실히 리부트나 프리퀄은 비단 헐리우드의 트렌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흐름으로 가나 봅니다. [공각기동대]의 쿠사나기 모토코가 공안9과에 배속되기 전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이 나올 정도니까요. [공각기동대 ARISE 보더: 1 고스트 페인]은 총 4화의 극장판 시리즈로 기획된 작품으로서 '소령'으로 불리는 모토코가 아직 군인이었을때 발생한 살인사건을 풀어나가는 시절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보다는 카미야마 켄지의 [공각기동대 SAC]를 따라가고 있습니다만 캐릭터의 리뉴얼이라든가 성우진의 전면적인 교체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특히 타나카 아츠코를 비롯한 주요 배역들은 극장판 시절부터 노선을 달리한 TV판까지 모두 함께 했었는데, 이런 익숙함을 버리고 성우진을 교체한 건 대단한 노림수가 있지 않는한 팬들의 심한 반발에 부딪힐 수 밖에 없겠지요.
ⓒ 士郞正宗/ Production I.G/講談社/ 攻殼機動隊製作委員會
실제로 [공각기동대 ARISE 보더: 1 고스트 페인]은 이야기의 전개나 구성이 친절함과는 거리가 멀고 특히 설정 여기저기에서 프리퀄로 봐주기에는 전작(으로 생각되는)들과 충돌되는 지점들이 발견됩니다. 이를테면 형사출신으로 공안9과에 스카웃되는 토그사의 합류시점은 흐름상 다른 요원들 보다 가장 늦은 '신참'의 느낌이어야 하는데, 프리퀄인 본 작품에서 너무 일찍 모토코와 만나게 됩니다. 기존 멤버들을 빨리 선보이고 싶은 마음은 알겠는데, 성급한 판단인 거죠.
또한 소령의 전신의체화 시점에 대해서는 [공각기동대 2nd GIG]에서 사고로 인한 유년기 시절인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만 본 작품에선 태아시절인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때문에 기존 작품들에서 의체화되기 이전 시절의 느낌을 간직한 소령이 여성손목시계를 착용하기 위해 여성형 의체를 고집한다는 설정도 무력화되고 말았죠. 제작진들은 이런 반발을 예상해서 인지 본 작품이 프리퀄이 아닌 리부트라고 주장하는 듯 합니다만 제가 보기엔 그냥 말장난에 지나지 않습니다.
ⓒ 士郞正宗/ Production I.G/講談社/ 攻殼機動隊製作委員會
작화나 액션씬의 표현에 있어서도 전작을 능가하는 획기적인 면모를 보여주지 못하며, 전작들에 대한 오마주 역시 별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키는데는 역부족입니다. 공안9과의 멤버들을 규합하는 과정을 보여주려는 시도는 괜찮지만 너무 작위적인 틀에 맞추다보니 개연성이나 설득력도 떨어집니다.
물론 이제 1부가 공개되었을뿐이므로 앞으로의 양상이 어떻게 바뀌게 될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전작들이 일구어 놓은 토양위에 그저 씨만 뿌려놓는다고 좋은 열매가 맺히는건 아닐겁니다. 확실히 이번 [공각기동대 ARISE 보더: 1 고스트 페인]은 전작들의 설정과 주제의식 안에서만 맴돌고 있을뿐, 원작을 다른 방법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는 보이지 않습니다. 카미야마 켄지가 보여준 멋드러진 수사극이나 오시이 마모루의 존재론적인 철학담론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상업 재페니메이션이 되어버렸달까요. 2부는 부디 [공각기동대]라는 제목이 아깝지 않은 작품이길 바랄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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