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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작열전(怪作列傳) No.122






 


여러분은 아마 설인(雪人)이라고 들어보셨을 겁니다. 흔히 고산지대에 있다고 하는 거대한 유인원을 지칭하는 말인데, 북미지역 록키 산맥 일대에서 목격되는 설인을 빅풋(Bigfoot) 혹은 사스콰치(Sasquatch)라고 부르며, 히말라야에서는 티벳어에서 유래한 예티(Yeti), 그리고 인도네시아에선 오랑 펜덱(orang pendek)이라 불리우고 있지요.

기록에 의하면 예티에 대한 최초의 목격담은 1832년 한 영국인이 그의 하인을 공격했었던 털투성이의 생물을 묘사한 내용으로 보입니다. 그는 ‘길고 검은 털이 나 있는, 똑바로 서서 걷는 형태의 생물’을 언급했습니다.

1951년에는 등산가 십턴이 히말라야에서 예티를 목격했는데, 가우리상카의 빙하에서 발견한 40cm에 달하는 예티 발자국의 흔적을 1km나 찍어서 세상을 놀라게 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1962년에는 본격적으로 예티에 대한 학술적인 접근이 이루어졌는데, 설인의 정체를 밝히려고 라마사원에 보관된 예티의 가죽을 면밀히 조사했으나 결국 고산지대 염소의 머릿가죽인 것으로 밝혀졌지요.

1967년 로저 패터슨이 블러프 강에서 촬영한 빅풋 영상은 지금까지 논의된 설인 관련 자료 중에서도 가장 유명합니다. 하지만 이 영상에 대해서도 조작여부를 놓고 꽤 시끄러웠죠. 존 랜디스 감독은 이 필름이 [혹성탈출]에서 유인원 분장의 보조업무를 한 존 챔버스가 만든 의상을 이용한 페이크라고 주장했고, 챔버스는 자신이 만든 분장 의상이 아니라고 반박하기도 했었습니다.



1980년에는 로버트 허친슨이라는 캐나다의 등반가가 '예티 88'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설인의 배설물을 찾아 채집하려고 했는데, 결국 설인의 존재를 증명하는데는 실패하고 말았지요. 이같은 설인찾기 시도는 21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며칠전에는 스코틀랜드 왕립동물원협회와 로얄외과대학의 주도로 예티의 손가락으로 추정되는 화석을 조사, 진위 여부를 가리는 작업이 진행 중이라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지요.

이처럼 설인에 대한 미스테리는 영화의 소재로도 적합할 만큼 재미있는 구석이 있는데, 의외로 설인을 소재로 한 영화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이 1977년작 [성성왕]인데요, 지난 괴작열전을 통해 소개한 바 있으니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하겠습니다. 또한 1980년대에 수입되어 인기를 끌었던 [내 친구 바야바 Bigfoot and wildboy]란 TV 시리즈물이 있었는데 이 역시 1977년에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이거 방영할 당시 친구들이 ‘바야바’를 외치며 높은데서 뛰어내리는 장난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기억이 나네요.

내 친구 바야바 ⓒ Krofft Entertainment


생각해보니 1977년에 설인영화가 집중되어 있다는 점은 꽤 흥미롭습니다. 그 이유는 존 길러민의 1976년작 [킹콩]이 영화계에 일대 털복숭이 괴물의 트렌드를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1977년작 [스타워즈]의 츄바카도 그렇고, 노골적으로 [킹콩]을 패러디한 [퀸콩], [킹콩의 대역습], [성성왕] 같은 아류작들은 주로 1976년과 1977년에 집중적으로 나왔는데, 오늘 소개할 영화 [눈사람 예티] 역시 1977년 작품으로 설인영화의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눈사람 예티]의 제작은 국내에서도 꽤나 관심거리였던 모양인지 관련자료를 찾아보니 이런 기사도 있더군요. [킹콩]을 능가할 ‘설인’이라는 주제의 이 간단한 토픽은 3000만 프랑(약 30억원)을 들인 블록버스터급 작품이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실제 얼마가 들어갔는지는 관련 자료가 부족해 알 수 없네요.

동아일보 1978.3.16


이 작품은 나중에 한국에서도 MBC방송을 통해 특선영화로 방영되었는데요, 당시 ‘노약자와 임산부는 시청하지 말라’는 문구까지 넣으며 호들갑을 떨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럼 이 작품의 줄거리를 대충 살펴보겠습니다.

캐나다의 북쪽 극지방에서 냉동된 채 잠들어 있는 예티를 발견한 과학자들이 이를 헬기로 운반하던 도중 예티의 생체반응이 감지됩니다. 소생한 예티는 낯선 환경에 놀라 포박을 끊고 우리를 탈출하는데, 난리통에 그만 떡실신한 제인과 그의 동생 허비를 발견하고는 그들을 손에 들고 어디론가 갑니다.

ⓒ Stefano Film, Miramax Films. All rights reserved.


제인은 예티에게 적의가 없다는 것을 알고 다친 손을 치유해 주는 등 호감을 보이는데, 이때부터 예티는 제인의 말에 따르게 됩니다. 하지만 언제나 악당은 있는 법. 예티를 구경거리로 만들어 돈을 벌려던 업자에게 속아 도시로 온 설인은 여기저기서 터지는 플래시 세례에 발끈해 다시 난동을 부리게 되고 이 과정에서 피해자가 속출합니다.

대강의 시나리오를 보면 아시겠지만 [눈사람 예티] 역시 백인 여성에게 홀딱반한 거대 유인원의 러브 스토리를 다룬 [킹콩]의 아류작입니다. 특별히 대단한 볼거리도 없고, 새로운 이야기도 없습니다. 다만 인간의 얼굴을 한 예티의 표정연기를 볼 수 있다는 특징이 있는 영화이지요. 실제로 예티역의 밈모 크라오는 딱 세가지의 표정을 보여줍니다.

ⓒ Stefano Film, Miramax Films. All rights reserved.

이 영화를 볼 당시에는 그래도 나름 재밌게 봤다고 생각되는데요, 어느 한 장면에서는 영화를 같이 감상하시던 아버지께서 ‘헐~ 이거이거.... 무슨 영화가...’ 하면서 혀를 끌끌 차시던게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어느 장면이냐면 바로 이 장면입니다.

ⓒ Stefano Film, Miramax Films. All rights reserved.

악당을 마구 밟아주다가 갑자기 발을 떼서 악당을 살려주나 싶더니만 발가락으로 악당을 질식사시키는 장면. -_-

그 외에는 크게 충격적이거나 잔인한 장면은 없는데 유독 임산부는 보지말라고 광고를 한 이유는 위의 그 장면 때문이 아니었나 싶군요. 엔딩도 조금은 허무하달까... 다른 아류작들이 가슴찡한 울림을 안겼던 [킹콩]의 비극적 결말을 따라간것과는 달리 살인누명까지 쓰고 궁지에 몰린 예티에게 선택의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도 차별을 두었습니다.

뭐 어쨌거나 [킹콩]의 아류작치고 [예티]는 나름 인상적인 캐릭터를 보여준 것 같습니다.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뇌리속에 강하게 남아있는 걸 보면 말이죠.

P.S:
1.이태리 영화인데 모든 대사가 영어처리된 것이 흥미롭습니다. 게다가 배경은 캐나다의 토론토 신 시청앞 시가지라 지금보니 낯익은 장소가 많이 나오더군요.

2.감독인 지안프랑코 파롤리니는 프랭크 크레이머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율 브린너의 첫 마카로니 웨스턴 [아디오스 사바타]를 비롯해 다양한 마카로니 웨스턴 무비를 찍은 감독이지요.

3. [엑스칼리버]의 메인테마로 유명한 칼 오르프의 작품 'Carmina Burana’의 변주곡은 영화의 완성도와는 달리 매우 훌륭한 OST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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