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작열전(怪作列傳)

괴작열전(怪作列傳) : 기동전사 건담 G-세이비어 - 건담의 실사판, 그 진실은?

페니웨이™ 2007. 10. 29.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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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작열전(怪作列傳)  No.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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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의 최대 화제작 [트랜스포머]는 실로 '화면의 경이' 그 자체였습니다. 거대한 로봇들이 인간 세계에서 벌이는 육탄전의 충격은 지금도 뇌리에서 잊혀지지가 않는데요,  국내 개봉외화 중 최다 관객수 기록을 갱신했고 한국에서만 해외 흥행수입의 13%인 5019만 달러(약 471억원)를 거둬들이며 해외 흥행에서도 단연 1위를 기록했습니다. 이같은 현상은 아마도 어린시절 로봇 만화를 보며 자라온 한국인들의 정서적인 특성과도 잘 맞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덕분에 헐리우드는 지금 로봇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하는 프로젝트에 불이 붙은 상태입니다. 이미 [마크로스]와 [볼트론]은 제작이 확정된 상태고, 그동안 루머로만 떠돌던 [에반게리온] 역시 언젠가는 만들어질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로봇 매니아들에게 있어서는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지요. 아마 [트랜스포머]의 수준만 유지해줘도 사람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겁니다.

그런데, 어딘가 좀 허전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으십니까? 우리가 '로봇'을 논함에 있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그 무엇이 언급되지 않은 듯 합니다. 네, 바로 '기동전사 건담'입니다. 사실 '기동전사 건담 연대기' 10부작 리뷰(번외편 포함)를 쓸 정도로 저도 한때는 건담의 매니아였습니다. 나가이 고 원작의 '마징가 3종세트'를 제외하고 한국에서 이만큼 많이 알려진 로봇 애니도 드물겁니다. 영화 [스타워즈]에 못지 않은 방대한 세계관을 가진 이 작품이야 말로 실사화에 있어서 반드시 언급되어야 마땅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의외로 건담을 실사화하겠다는 소식은 없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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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담은 왜 빼느뇨? (사진은 [건담 이볼브])


이미 '기동전사 건담'은 실사화 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알고 계신 분도 계시겠지만 모르는 분들을 위해 소개하겠습니다. 바로 [기동전사 건담: G-세이비어] (주의: 건담씨드의 그 세이비어가 아님)가 그 주인공입니다. 놀랍게도 이 작품은 [기동전사 건담 윙: 엔드레스 왈츠], [밀러의 리포트]와 함께 건담 20주년을 기념한 '빅뱅 프로젝트'의 일환으로서 반다이의 전폭적인(?)지지에 의해 만들어진 TV용 영화입니다. 기대감에 두근거린다고요? 저도 그랬습니다.

이 영화가 공개된 2000년 당시만해도, 영화계에서는 이제 막 도약의 단계에 서 있는 CG 기술을 활용하기 위해 여러 가지 다양한 실험적인 작품들을 내놓고 있던 때였습니다. 예전같으면 특수효과를 위해 값비싼 비용을 들여야 했지만 CG의 발달로 인해 대부분의 특수효과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도 충분히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건담의 실사화도 바로 이러한 취지에서 출발한 것이었겠지요. 사람은 실제 배우가 연기하되, 건담을 비롯한 모든 모빌슈트는 CG의 힘을 빌리기로 한 것입니다. 물론 시도는 좋았습니다.테스트 필름만으로 2억엔, 총제작비 10억엔을 투입하면서 엄청난 물량공세를 펼친 [G-세이비어] 대한 기대감은 상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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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담의 실사화, [기동전사 건담: G-세이비어]


과연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애니메이션으로는 처음으로 실사화가 시도된 로봇인 [G-세이비어]는 모빌슈트의 표현력을 논하기에 앞서 너무나도 형편없는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가지 특이할 점은 [G-세이비어]가 선택한 시기가 우주세기 223년이라는 것인데, 건담월드에서 공식적으로는 마지막 우주세기를 그린 [기동전사 V건담]의 설정이 U.C 153년으로 되어있는 것을 고려하면 이보다 70년뒤의 세계인 셈입니다. 여기까지는 기존 건담의 설정을 최대한 건드리지 않는 컨셉으로 가는군요.

우주세기 223년은 지구연방의 세력이 사실상 와해된 것으로 묘사됩니다. 이에 구(舊)연방의 세력들은 세틀먼트(Settlement, 콜로니의 새로운 명칭)인 사이드 2와 3, 5, 7을 통합해 '세틀먼트 국가의회 (Congress of Settlement Nations: CONSENT)'를 설립, 그들의 기반을 강화합니다. 반면 달과 사이드 1, 4는 '세틀먼트 자유동맹'을 결성해 이에 대항하지요. 여기에 더해 중립국인 사이드 6와 사이드 8 (일명 가이아), 그리고 이들간의 세력 조정을 위해 결성된 '일루미너티'란 조직이 결성됩니다. 한편 '세틀먼트 국가의회'의 새로운 의장으로 선출된 가노(케네스 웰쉬 분)는 호전적인 인물로서 독자적으로 연방 군대를 창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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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SENT와 자유동맹과의 가장 큰 대립원인은 식량의 부족인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인 '생물 발광 샘플'을 지닌 인물이 일루미너티 소속의 신시아(에누카 오쿠마 분)라는 여성입니다.  CONSENT의 파일럿인 마크(브래넌 엘리엇 분)는 석연찮은 이유로 구금된 신시아와 접촉해 이같은 사실을 알아내고 그녀를 구출해냅니다. CONSENT의 보좌관 잭 헤일이 그들의 도주를 막아보지만 실패로 돌아가지요. 탈출에 성공한 마크와 신시아는 사이드 4에 도착해 일루미너티의 일행과 합류하게 되고 뜻밖에도 이곳에서 마크의 오래된 전우 필리페를 만나게 됩니다. 필리페는 마크에게 G-세이비어라는 궁극의 모빌슈트를 건네줍니다.

힌편 중립국 '사이드 8 - 가이아'를 점령해서 식량란을 해결하려는 계획을 세운 가노 의장은 CONSENT의 모빌슈트 부대를 동원해 침공을 개시힙니다. 굳이 전쟁이 아니더라도 식량란을 해결할 수 있음에도 굳이 전쟁을 선택한 가노의 야심을 알아챈 마크와 일루미너티의 일행은 가이아에 합류해 CONSENT와의 일전을 치룹니다. 이제서야 G-세이비어의 활약이 시작되는 거죠. 결과는 뻔합니다. 가이아는 적을 물리치고, CONSENT와 잭, 그리고 가노 의장은 비참한 패배를 당합니다. 그리고 우주세기는 다시 평화의 시대로 돌아가는 거죠. 사람들은 훗날 이 사건을 "가이아의 빛 사건"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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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워낙 출중한 글솜씨로 소개를 해놓으니 (에헴!) 그럴듯해 보이십니까? 안타깝게도 영화는 그 어떤 건담 애니메이션보다 못한 엉성한 플롯을 보여주며, 거기에 도저히 눈뜨고 못봐줄 배우들의 연기가 더해져 건담이라는 이름이 울고갈 정도의 완성도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웃기는건 93분이나 되는 러닝타임 동안 건담이 등장하는 시간은 채 10분도 안된다는 겁니다. 후반부에 들어 모빌슈트간의 백병전이 펼쳐지긴 하지만 배부분 실사와 CG의 교차편집으로 실제 모빌슈츠들이 등장하는 씬은 최대로 잡아줘도 한 20분 정도? 나머지 70분은 이름없는 배우들의 인내력 테스트를 견뎌야만 합니다. ㅡㅡ;;

CG의 기술력은 어떠냐고요? 1999년의 수준을 감안해도 플레이 스테이션1 게임의 동영상을 넘어서지 못하는 정도라면 이해가 빠를겁니다. 오늘날 [트랜스포머]를 보며 높아질대로 높아진 관객들의 눈높이는 명함도 못내밀 정도지요. 한 30년 전쯤에 이 작품이 나왔더라면 그때는 [트랜스포머]급의 대우를 받을 수 있었을까요? 며느리도 모를일입니다. 게다가 완성도가 떨어지는 영화들의 특징인 '어두운 화면 신공'을 쓰고 있어 대부분의 장면이 어두침침하고, 심지어 흑인배우인 에누카 오쿠마(신시아 역)가 등장하는 장면은 상당부분 얼굴도 제대로 보이질 않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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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럴싸하긴 하다만.. 문제는 이마저도 불과 몇장면 안된다는 것.


건담 20주년 빅뱅 프로젝트라는 야심찬 기획에도 불구하고 [G-세이비어]는 무척이나 실망스럽습니다.  기존 건담들의 역사를 피해 우주세기 223년이라는 연대를 선택한 현명함은 있으나, 그외의 디테일은 상당히 떨어집니다. 아니 왜 하필 CONSENT의 유니폼이 지온 장교의 코스튬이냐고요~ 200년도 더 지난 시절의 유행인데 말입니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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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도 더 지난 지온의 유니폼을 아직도 입는거냐!


이렇게 생뚱맞은 건담이 탄생한 것은 반다이의 프로듀서를 맡은 이노우에 코이치가 [G-세이비어]를 애니메이션의 연장선으로서가 아닌 독립영화적 스타일로 만들길 원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감독과 그외의 스텝 전원을 건담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무한 사람으로 뽑은 것도 그 이유랍니다. 결국 태생부터가 '건담의 실사판'이라기 보단, '거대 로봇이 등장하는 헐리우드 SF영화'쪽에 더 가까웠던 것이지요. 사실상 실제 배우와 CG의 결합이라는 아이디어는 시도만 좋았을뿐, 일본의 전대물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작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더군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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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정말이지 울고싶더라는...


모든면에서 [G-세이비어]는 너무 성급하게 제작되어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건담이라는 소재가 분명 매력적인 것이기는 해도, TV판 영화의 소재로 쓰이기에는 너무 아까운 작품입니다. 아마 저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G-세이비어]는 [윙 커맨더]와 함께 20세기를 마감하는 최악의 SF영화중 하나가 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아마 [G-세이비어]의 충격적인 완성도 때문에 아직까지도 건담의 실사영화를 만들겠다고 감히 나서는 제작자가 없는 것이 아닐까요. '건담 실사판 = G-세이비어'라는 선입견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을테니까 말이죠. 그래서 선라이즈가 아예 [건담 이글루]나 [건담 이볼브]처럼 풀 3D 애니메이션에만 관심을 보이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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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이 작품은 국내에 비디오로도 출시된 바 있습니다. 커버에는 자쿠와 뉴건담의 사진을 떡하니 붙혀놓았는데, 표지만 보고 테잎을 빌렸거나 구입한 사람들에게 심심한 애도를 표합니다.



* [G-세이비어]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Bandai Ent.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 참고 스틸: 건담 이볼브(ⓒ Bandai Ent.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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