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ㅅ

식객 - 먹음직스럽지만 맛은 떨어지는 이유

페니웨이™ 2008. 2. 12. 09:50
반응형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민 1.5 세대들의 아메리칸 드림을 다룬 TV드라마 [아스팔트 사나이], 젊은 청춘들의 방황을 스타일리쉬하게 연출해 낸 [비트], 도박판을 배경으로 다양한 군상의 심리를 표현한 [타짜], 만화가 허영만의 작품들은 TV드라마나 영화적 소재로도 손색이 없음이 증명되어 왔다.

ⓒ 김영사 All Rights Reserved.


그간 허영만 화백이 그려낸 작품의 수가 엄청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소재고갈에 허덕이는 한국 영화계에 있어서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은 것이라 할 수 있겠다. 2007년에 개봉된 [식객]은 허영만의 대표작 중 하나로서 '요리'를 소재로 다룬 원작만화를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이다. 개봉당시 흥행에서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둔 작품이지만 관객들의 평가는 호불호가 갈리는 경향이 두드러진 이 작품은 과연 원작만큼의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작품인 것일까?


 

    1.미각에서 시각으로의 변화  


한국 영화로서는 드물게 요리를 소재로 다루었다는 것은 일단 장르의 다변화에 있어서 한발짝 나아갔다는 얘기다. 이 점은 참 고무적인 일이다. 뻔한 레파토리로 울궈먹던 한국 영화계에 색다른 소재가 등장했다는 것만으로도 [식객]은 기획초기부터 관심을 모았다. 비단 허영만 원작의 '식객'이 아니었더라도 이슈성은 충분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문제는 맛의 세계를 어떻게 영상화했는가, 다시말해 미각적 쾌감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스크린에 담아냈는가 하는 문제다. 안타깝게도 [식객]은 주인공들이 정성들여 만든 요리의 맛에 대한 전달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심하게 말하자면 TV의 맛집소개 코너에서 시청자들의 식욕을 자극하는 표현력의 절반도 따라가지 못한다.

ⓒ 쇼이스트/ 예당엔터테인먼트 All rights reserved.


[식객]에서 음식의 맛을 표현하는 방법은 비주얼이 아닌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서다. "입안에서 닭과 병아리가 돌아다닌다' 던가, '학이 바다에서 올라왔다'느니 하는 유치찬란하고도 과장된 어법은 그 음식이 실제 어떤 맛인가를 전혀 관객에게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이건 마치 '겁나게 맛있네, 넌 못먹으니까 약오르지?'하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똑같이 '요리'를 소재로한 애니메이션 [라따뚜이]에서는 구태의연한 미사여구없이 음식을 스푼에 얹어 입속에 넣는 장면만으로도 관객의 감정이입을 충분히 살려냈다는 걸 생각하면 [식객]의 때깔좋은 음식들은 그저 '빛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다. 원작이 보여주었던 요리의 감동과 맛이 밍밍한 물맛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2.캐릭터 구축의 실패  


[식객]의 주인공은 성찬과 봉주 거기에 진수를 더해 3명이다. 사실 캐스팅 과정에서 원작과의 미스매칭 때문에 많은 잡음이 있었지만, 장래가 유망한 김강우와 임원희 그리고 [메리대구 공방전]에서 최상의 연기를 보여준 이하나가 가세했을 때 이러한 걱정은 기우가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아뿔사. 이 세명의 배우들은 그들이 가진 연기력을 채 발산하기도 전에 무너져 내린다. 그동안 맛깔나는 조연으로 영화 곳곳의 살아숨쉬는 캐릭터를 연기해왔던 임원희는 [식객]에서 그야말로 최악의 연기를 선보인다. 그가 맡은 악역 캐릭터 봉주는 정말 전형적인 악역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악역을 위한 악역으로서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성찬과의 라이벌 의식으로 겪는 내면적인 갈등이 전혀 드러나 있지 않은채 그저 탐욕만으로 앞세운 무능한 요리사일 뿐이다. 어떻게 보면 [식객]에서 가장 매력적일 수도 있는 캐릭터를 단순 악역으로 전락시킨 실패한 캐릭터다.

ⓒ 쇼이스트/ 예당엔터테인먼트 All rights reserved.


성찬은 어떠한가? 김강우가 모처럼 주연급으로 나선 이 캐릭터 역시 생동감이 없다. 김강우의 표정은 거의 변화가 없으며, 웃을 때 웃지 않고, 울어야 할 때 울지 않는다. 단지 요리할 때 요리사처럼 그럴듯하게 보이기만 하면 자신의 역할을 다 한 듯, 무미건조하다.

이하나는 유일한 홍일점인 진수역에 꽤 진지하게 임하고는 있지만 지나치게 튄다. 어떻게 보면 진수라는 캐릭터에 꽤 잘 어울리는 배우이긴 하나, 앞서 언급한 임원희와 김강우와는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모처럼 비중있는 역할로 스크린에 데뷔했지만, 그녀의 모습을 [식객]으로 기억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이미 그런 여성 캐릭터는 흔하디 흔하게 봐왔으니까 말이다.


 

    3.메인 요리가 빠진 스토리  


무엇보다도 [식객]은 스토리의 전개에 있어서 그 균형을 잃었다. 요리는 나와있는데, 음식을 만드는 과정은 빠진 느낌이다. 대령숙수의 칼. 그 주인을 찾는 토너먼트를 치르면서 응당 느껴져야 할 긴장감은 사라진지 오래고,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도 너무나 뻔하고 당연하게 이루어진다. 반면, 숯을 구하는 과정이나 자신이 애지중지하던 소를 도살하는 장면 등은 영화에서 필요 이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그 비중에 비해 에피소드가 주는 감흥은 현저히 떨어진다.

ⓒ 쇼이스트/ 예당엔터테인먼트 All rights reserved.


이러한 편식 위주의 플롯 구성은 영화를 산만하게 만들고 있다. 경연대회에서의 스릴이나, 대령숙수의 죽음에 대한 미스테리, 대령숙수가 만들었다는 궁극의 쇠고기국의 정체 등등 [식객]에서 다루어져야 할 매력적인 소재는 풍성하지만 그 어느것 하나도 영화의 '주 소재'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반찬'은 많은데, '메인 요리'는 없는 셈이다.


 

    4.장점들  


만화의 먹선을 보여주는 화면 구성으로 실제 만화같은 화면의 느낌을 재현한 것이라든가, 중간중간 웃음을 유발하는 배우들의 재치있는 애드립, 그리고 "세상의 모든 맛있는 음식은 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숫자와 동일하다"와 같은 인상깊은 대사들이 제법 많이 등장하는 것은 [식객]이 가진 장점이다. 완성된 요리의 화려한 비주얼도 요리가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느껴지게 하는 또하나의 볼거리다.

또한 완성도를 떠나서 영화화하기엔 다소 무리라고 판단되는 원작의 내용을 대령숙수의 칼을 찾기 위한 요리 대결이라는 메인 플롯에 원작의 에피소드를 곳곳에 배치한 시도도 제법 영리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이러한 장점들이 좀 더 구체화 되고 세련된 연출과 함께 빛을 발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5.총평  


[식객]은 비록 흥행에서 성공한 작품으로 남았지만, 그만큼 성공작으로서 받아야할 많은 기대치에는 다소 못미치는 영화다. 영화의 빈 칸을 매꾸어 가는 플롯의 섬세함이 떨어지고, 비약적인 설정도 많으며, 재능있는 배우들의 연기력을 끌어내는데 실패했다. 결국 [식객]은 유난히 힘들었던 2007년의 한국영화계에서 그나마 참신했던 작품이었다는 것 외에는 그리 큰 점수를 주기 힘든 작품이다.

ⓒ 쇼이스트/ 예당엔터테인먼트 All rights reserved.


그럼에도 [식객]처럼 좋은 원작을 영상으로 옮기는 시도는 앞으로 계속 시도되어야 할 도전 과제라고 보여진다. 또한 김래원, 서지혜를 주연으로 120억을 들여 제작하는 TV드라마 버전의 [식객]도 기대된다. 이것저것 너무 욕심을 부려서 오히려 산만해진 영화판에 비해 에피소드를 풍부히 제공할 수 있는 TV드라마야 말로 원작 '식객'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테니까 말이다.


* [식객]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쇼이스트/ 예당엔터테인먼트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 참고 스틸: 식객 (ⓒ 김영사 All Rights Reserved.)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