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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작열전(怪作列傳)  No.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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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작열전의 초기에 소개한 [대괴수 용가리]나 [킹콩의 대역습]을 통해서도 볼 수 있듯이 한국에도 제법 괴수물에 대한 시도가 꾸준히 있어왔다는 것쯤은 다 아실 겁니다. 물론 이 작품들은 일본의 [고지라]나 헐리우드의 [킹콩]을 모방한 아류작의 수준이지만 [우주괴인 왕마귀]라던가 [불가사리] 등의 괴수는 순수한 한국의 괴수라는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작품이지요.

최근에는 심형래 감독의 [용가리], [디 워]나 봉준호 감독의 [괴물] 등 화제작들이 나와주고는 있지만 한동한 한국영화계에서 괴수물은 꽤나 오랜 세월동안 찬밥신세였습니다. 실제로 1970년대에들어서 용유수 감독의 애니메이션 [괴수대전쟁]을 제외하고는 괴수물의 명맥이 거의 끊어지다시피 했답니다. 반면 이웃나라 일본은 [고지라]시리즈를 비롯한 다양한 특촬물이 꾸준히 발전해서 지금까지도 당당한 장르물로 자리잡았지요. 특히 [고지라]는 영화의 메카인 헐리우드로 건너가 [고질라]라는 이름으로 리메이크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는 걸 보면 한편으로는 부럽습니다.

용가리, D-War by ⓒ 영구아트무비/ 괴물 by ⓒ 청어람 All rights reserved.


아무튼 그렇게 세월이 흘러 한국영화계의 암흑기와도 같은 1980년대에 들어서 주목할 만한(?) 작품 하나가 등장하게 됩니다. 그동안 [소림사 주방장]이나 [무림 걸식도사] 같은 짝퉁 한국산 무술영화에 심취해 있던 김정용 감독께서 메가폰을 잡고 [비천괴수]라는 제목의 괴수물에 착수하게 된 것이지요. 가뜩이나 괴수물에 목말라 하던 관객들에게는 가뭄에 단비와도 같은 반가운 소식이었을 겁니다.

더군다나 그동안 '용가리'나 '불가사리' 등의 원톱 괴수물만 등장했던 것과는 달리 [비천괴수]에는 괴수들이 떼거지로 나온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어 더욱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지요. 그러나 막상 [비천괴수]의 실체를 파악한 사람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이유를 이제부터 살펴보시겠습니다.

ⓒ 우성사 All rights reserved./ 비디오표지 ⓒ ㈜ 동양프로덕션


우선 먼저 [비천괴수]의 스토리를 살펴볼까요? 동해 바다에서 선박이 침몰하거나 피서를 즐기는 피서객들이 사라지는 괴이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에 강옥희라는 이름의 여기자는 학계에서 매드 사이언티스트로 소문난 김박사를 찾아가 조언을 구합니다. 사실 김박사라는 인물은 지구의 이상기온으로 인해 북극의 만년빙하에서 동면중인 공룡들이 부활한다는 (학자들로부터 매장당할만한) 황당한 이론을 제시했다가 학계에서 다구리를 당하고 홀로 자신의 학설을 입증하기 위해 칩거에 들어간 상태였습니다.

느닷없이 찾아온 강기자는 김박사에게 문전박대를 당하고 이에 질새라 강기자는 가정부로 변장, 김박사의 집에 몰래 숨어들어 공룡부활설이 담긴 박사의 극비서류를 훔쳐봅니다. (그러나 이미 학계를 비롯해 언론에서는 '극비'가 아니라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는거.. ㅡㅡ;;) 그리고는 박사가 집을 비우자 박사의 딸인 소희를 데리고 영화의 내용과는 아무 상관없이 춤추는 장면에만 10분 가량의 러닝타임을 소모합니다. (그야말로 시간 잡아끌기 신공의 결정체이지요 ㅡㅡ;;)

ⓒ 우성사 All rights reserved.


암튼 박사는 바깥을 싸돌아 다니면서, 공룡 발자국이라던가 뼈 등의 흔적을 발견하고는 "왜 내말을 안믿냐"며 비련의 주인공마냥 울부짓습니다. 때를 맞춰 이제 괴수들의 전세계(라고 쓰고는 남한이라고 읽는다..) 침공이 시작됩니다. 다양한 괴수들이 발맞춰 나와서는 신나게 때려부수지요. 뭐 한국에서는 있지도 않는 일본 자위대의 팬텀 전투기를 출격시켜서 대항하는등 온갖 방위태세를 취합니다만 완력으로 파괴를 일삼다가 급기야 코에 붙어있는 뿔로 서로 스파크를 일으켜 태풍을 동반한 기상이변까지 유도하는 초능력 괴수들 앞에서는 역부족입니다.

이런 와중에 괴조 테로틸스의 알을 깨뜨렸다가 어미한테 걸려서 죽을 뻔 하는 김박사, 괴수가 이기면 박수를 치며 좋아하고 전투기가 이기면 울어대는 '미친년 증후군'의 소희, 아기를 데리고 피난한답시고 베개를 들쳐업고 냅다 달리는 피난민들의 아스트랄한 상황이 연출되면서 시민들은 극도의 혼란상태에 빠집니다. 그러다가 한순간 미친 듯이 날뛰던 괴수들이 방위군의 공격에 맥없이 픽픽 쓰러집니다. 군의 작전이 먹혔대나 어쨌대나..

ⓒ 우성사 All rights reserved.


암튼 뻘짓을 하면서 "왜 나만 미워해~"를 외치던 박사, 그리고 강기자와 소희가 만나 결국 재회의 기쁨을 누립니다. 소희는 박사에게 '아줌마가 엄마가 되었으면 좋겠다' 면서 겁나 분위기 파악못하는 재혼 압박을 가하고, 박사는 [터미네이터]의 아놀드 슈왈제네거마냥 'Monsters will be back'이란 명대사를 남긴다는 알흠다운 이야기....는 개뿔이!

스토리만 봐도 괴팍하기 이를데 없는 [비천괴수]는 놀랍게도 오프닝에서부터 볼프강 피터슨 감독의 [특전 유보트]의 OST를 무단으로 도용하는 대담함을 보여줍니다 ㅡㅡ;;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이 작품에서 가장 괴작스런 부분은 바로 괴수들에게 있습니다.

사실상 떼거지로 나오는 괴수들에 큰 기대를 품은 관객들이 많았을텐데, 아쉽게도 [비천괴수]에 등장하는 괴수들은 일본의 유명 전대물 [울트라맨] 시리즈의 괴수들을 빌려쓴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울트라맨]의 팬이시라면 너무나도 잘 아실 '시고라스'나 '시몬스', '테로틸스' 등이 그대로 등장하는데요, 웃기는건 이들 괴수들이 등장해 마구 설치다가 울트라맨이 나타날 시점에는 화면이 급전환 된다는 겁니다. 말 그대로 무단으로 필름을 가져와 짜집기를 했기 때문이지요.

ⓒ 우성사 All rights reserved.


문제는 이 당시만해도 일본의 전대물에 대한 정보들이 '미니대백과'나 일본 방송을 소스로 복사해 보던 비디오 테입 등을 통해 많이 확산되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이미 [울트라맨]의 괴수들이 [비천괴수]에 등장한다는 걸 알 만한 친구들은 다 알았다는 겁니다. [마징가 제트]나 [그랜다이저]를 한국 만화처럼 둔갑시켜 국민들을 속인것도 모자라, 이제는 아예 일본 괴수들이 한국을 침공하는 굴욕적인 상황을 연출한 셈이지요. 결국 이렇게 필름 짜집기와 오려붙이기의 신공을 보여주는 [비천괴수]는 실로 오랜만에 등장한 괴수물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심히 괴작스런 작품이 되어 버렸습니다.

물론 (이 때만 해도 금지되었었던) 일본 영화의 장면들을 대형 스크린에서 감상할 수 있었다는 별 말도 안되는 데에서 의의를 찾을 수는 있겠습니다만, 결국 [비천괴수]이후 또다시 괴수물은 메이저 영화장르에서 빗겨난 처지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나마 '제대로' 괴수물의 바톤을 이어받은게 심형래 감독의 [용가리]였고, 그 이전엔 [영구와 공룡 쭈쭈], [영구와 우주괴수 불괴리] 등의 아동용 비디오 영화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을 뿐이지요.

ⓒ 우성사 All rights reserved.


이쯤되면 영화계에서 터부시한 장르가 그대로 방치되었을 때 얼마나 기술적으로 후퇴할 수 있는가를 입증하는 살아있는 표본이라고 해도 될만큼 [비천괴수]가 보여준 모습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차라리 이 작품 보다는 [대괴수 용가리]나 [우주괴인 왕마귀] 쪽이 훨씬 자랑스럽고 더 떳떳한 것이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2007년 가장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디 워]에 대한 관심은 꽤나 긍정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논점 자체가 헐리우드 진출에 맞춰져 있긴 했지만 그 장르가 한국적인 설화에 근거한 괴수물이었다는 사실은 추후 한국영화에서 괴수물의 재도약에 대한 희망을 엿볼 수 있으니까 말이지요.



* [비천괴수]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우성사 (또는 이에 권한을 위임받은 판권사)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 참고 스틸: 용가리 & D-War (ⓒ 영구아트무비 All rights reserved.), 괴물 (ⓒ 청어람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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